사람은 태어날 때,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무지한 상태로 태어난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이 땅에서의 삶을 시작한 후에야 부모ㆍ형제ㆍ이웃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삶을 살아간다. 소망하기로는 창조주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기 전 삶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사전교육을 미리 좀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은 주어진 삶을 살아나가면서 그 속에서 배우고 익혀 나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내가 이 땅에 첫 발을 디딜 때에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따스한 어머니 품에 안겨 곤히 자던, 한 사진 속의 내 모습은 지극히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것이 나에게 남아 있는 ‘사랑’에 대한 원초적 기억이다. 결국 ‘사랑’이란 나의 시선이 머무르고, 살결 닿는 곳에 있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따스하고도 부드러운 삶의 어느 순간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삶의 반경이 계속 넓어지면서 상황은 바뀌어 갔다. 살아갈수록 내가 경험했던 일보다 경험하지 못한 일이 더 많았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으며, 이해할 수 있는 일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더 많은 수고와 인내가 필요한 ‘사랑’과 ‘이해’보다 그저 손쉽게 결론지어 버릴 수 있는 ‘판단’과 ‘정죄’를 내리 선택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학부시절, 어느 선생님께서 일러주신 ‘사랑의 방법론’을 다시 새기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사랑’이 회복될 수 있다면 삶은 생명력을 지니고, 다시금 의미 있는 호흡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알 만한 대상이라 생각되면 알려고 노력할 것이고,
알려고 노력하다 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며,
이해하게 되면 곧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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