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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인문학연구단 한국학연구원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주한 “「디지털대구동구문화대전」 기초조사연구 및 원고 집필 사업”을 2017년 4월 13일부터 2018년 1월 31일까지 수행하기로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사업은 대구동구 지역의 각종 문화 자료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지식 정보를 가공하여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인터넷상에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이 사업은 대구 동구 지역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망라하는 아카이브를 작성하고, 「디지털대구동구문화대전」에 수록될 1,600개(예비항목 300개 포함)의 항목을 선정하여 사전을 집필하는 것이다.
이 사업에서 나는 연구보조원으로 시작하여 연구원으로 승진하였다. 이 사업에 내가 참여한 이유는 한국학연구원에서 이를 주관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구 최초로 디지털사전을 편찬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이 사업이 끝날 때까지 한국학연구원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8월 초순경에 나는 이 사업과 관련하여 집필교육을 받기 위해 이 사업의 실무자인 PM(Project Manager) 두 분과 함께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출장을 갔다. 집필교육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구축한 온라인집필시스템의 사용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집필 교육을 이수하여 대학교수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50여 명의 집필진에게 다시 교육을 실시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었다. 무더운 여름의 동대구역, 새벽안개를 KTX로 뚫고 서울역에 도착, 다시 직행버스로 환승하고 걸어서 우리는 성남의 산자락에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도착했다. 도착한 순간, 오늘의 에너지(energy)를 모두 소진한 기분이 들었다.
당일 일정이라 오전에는 업무 협의를 하고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집필 교육을 받기로 했다. 빠듯한 일련의 일정이 다행히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여기에 자주 오기 힘든 터라 하나라도 더 배우고 가려고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움켜쥐었다. 시간은 KTX처럼 빨리 지나갔다. 이제 오늘의 출장을 잘 마무리하고 다시 대구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때 갑자기 낯익은 얼굴이 우리가 있는 소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는 다짜고짜 “저 두 분은 PM이라 오늘 오는 기 당연한데 저 사람은 연구원인 기 여 말라꼬 왔는데?”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 나와 함께 면접을 본 일이 있는 동향(同鄕) 사람인데 두 PM들과는 이미 친분이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이 우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하나의 퍼포먼스(performance)인 줄 알고 “아름다운 여성 두 분만 먼 데로 출장 보내기가 좀 그래가이고 보디가드도 할 겸 따라 왔으예, 허허허.”라고 응수했다. 이 발화는 청중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지만 이쯤 되면 헛웃음으로 상황이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그 표정 그대로 “저 말투는 어디 말투고, 저거?”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아직도 그가 퍼포먼스를 하나 싶어 “제가 얼굴도 모던하고 말투도 도시적이라가 평소에 서울 사람 같다는 오해를 좀 많이 받지요. 으하하하.”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 순간 진공상태와 같은 정적이 흘렀다. 에어컨에서 냉기가 나오는 소리만이 이 순간이 현실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다들 나의 인내와 재치 있는 응수에 잠시 넋을 잃은 줄 알았다. 그때 서울 출신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아니죠. 어딜 봐서 거기가 서울 사람같이 생겼어요? 옆에서 듣자하니 나 참 기가 막히네.”라고 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가 다시 달려들어 “저 사람 저거 진짜 웃기네. 난 말투가 저 어디 두메산골, 거 와 안 있나, 그래 예천이나 청송, 영천 뭐 그 근천 줄 알았는데, 어이가 없네, 기도 안 차네, 참말로.” 이 상황이 퍼포먼스가 아님을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나는 살기 위해 함께 온 PM들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PM들은 계속 그러고 있던 것처럼 노트북 모니터와 책장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외모와 말투가 그래도 약간은 세련되었다고 믿어왔다. 40년간 간직해온 그 믿음은 지금 이 순간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그냥 촌스러운 아저씨일 뿐이었다.
서울역에서 동대구역으로 가는 KTX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보니 8월의 길고긴 해도 서서히 저물고 어둠이 슬그머니 몰려왔다. 해질녘의 고즈넉한 풍경도 차츰 사라지고 도시의 불빛과 함께 내 얼굴이 창에 비쳤다. 나는 웃어 주었다. 창에 비친 나도 웃었다. 그 모습이 한 여름 밤의 습기처럼 끈적끈적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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