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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 년에 네 번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인 『한국학논집』을 발간하는 일을 한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어미가 자식을 출산하는 것과 같은 인고의 과정을 거친다. 자식을 낳아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기가 단순히 귀여울 뿐일 수 있겠지만 그 어미에게는 그 이상의 눈물겹고 애처로운 존재이다. 나에게 『한국학논집』은 감히 어미와 자식의 관계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와 유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학논집』발간의 첫 단계는 논문 투고를 공지하여 논문을 수합하는 일이다. 요즘은 한국연구재단 등재지가 흔하여 투고를 받는 일부터 진통을 겪는다. 그나마 한국학연구원은 정기적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여기에서 발표된 논문을 투고하도록 권유하기에 수준 높은 논문의 최소치를 안정적으로 수합할 수 있다. 이렇게 수합된 논문은 편집위원회의를 통해 국내외 우수한 학자들을 심사위원으로 선정하고 심사위원에게 논문을 발송하여 심사를 받고 그 심사서를 수합하여 편집위원장과 상의하여 게재 목록을 작성한다. 최근에는 한국연구재단의 온라인논문투고시스템을 이용하여 이 과정을 보다 투명하고 정확하게 진행한다.
게재 목록이 결정되면 시방서(示方書)를 작성하여 인쇄소를 선정하고 논문의 교정∙교열, 편집 등의 작업을 한다. 표지와 목차, 부록, 별쇄본 등을 각 호에 맞게 제작하여 편집된 논문과 합쳐 『한국학논집』350권과 투고자용 별쇄본 20부씩을 발간한다.
『한국학논집』이 나오면 동산도서관에 120권을 전달하여 전국 도서관으로 『한국학논집』이 발송되도록 하고 우체국에 가서 투고자와 심사위원, 전국의 대학 연구기관 등에 우편으로 130권 정도를 발송하고 영암관에 가서 50권 정도를 인문대 교수 우편함에 넣고 35권 정도를 짊어지고 우편수발실로 가서 영암관 외 다른 단대에 계신 교수님께 발송하고 나머지 15권을 한국학연구원에 보관한다.
동산도서관에 전달하는 『한국학논집』은 책을 봉투에 넣고 주소 라벨을 붙이는 작업을 거기에서 해주기 때문에 『한국학논집』을 그대로 주면 된다. 너무 고맙다. 나머지 책은 내가 일일이 봉투에 넣고 테이프로 봉하고 우편 라벨을 출력하여 붙이기 때문에 다하고 나면 손이 감자송편처럼 희끄무레해진다. 그래도 발송을 마치면 뿌듯하다. 그리고 『한국학논집』을 누구나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과 한국학연구원 홈페이지에 논문 파일을 올린다.
『한국학논집』을 발송하고 나면 가끔 투고자들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고마워요. 책 잘 받았어요.”
“아 예, 별말씀을, 투고해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보통은 이 정도의 의례적인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런데 한 번은 투고자와 길게 통화를 한 적이 있다. 이 투고자는 학술대회 발표자이기도 한데 한국학논집을 발간하는 과정에서 나를 무던히도 힘들게 했다. 논문을 완성하지 못해 투고를 못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투고를 하겠다고 했다가, 심사를 못 받겠다고 했다가, 다시 심사를 받기로 했다가, 심사를 통과하고도 게재를 못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게재하기로 했다가. 하여튼 이 투고자는 나의 연약한 심장을 불태워 재로 만들어 버렸다. 발간을 하다보면 이런 일도 여사(餘事)고 힘들어도 지나면 다 잊힌다.
“고마워요. 책 잘 받았어요.”
“아 예, 별말씀을, 투고해주셔서 제가 더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의 첫 논문이 세상에 나왔어요.”
“뭐, 선생님께서 열심히 하신 덕분이죠.”
이쯤에서 나는 인사를 나누고 통화를 끝내려고 했다. 너무 길게 통화를 하다 보면 편해져서 말실수도 하게 되고 그러면 다음 투고에 지장이 있지 않겠는가. 저번에 모 투고자와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나중에 그게 화근이 되어 식겁한 기억이 얼핏 스쳐갔다. 그런데 이 투고자는 집요하게 통화를 이어갔다.
“그래도 선생님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어요.”
“아 예, 선생님께서 끝까지 열심히 하셔서 그런 거죠.”
“아니요, 저는 선생님 덕분에 해냈어요.”
이 투고자는 나에게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 나는 늘 하던 대로 일을 했을 뿐인데. 나도 내가 뭘 했는지 궁금해졌다.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음, 선생님께서는 말이죠. 정말 중요한 일을 하셨어요.”
“그게 뭔가요?”
“그게 참, 뭔가 중요한 일을 하셨는데, 그걸 뭐라고 해야 하나?”
“…….”
“아 맞다. 선생님은 말이죠. ‘독촉’을 하셨어요.”
“아 예. 근데 그거 안 좋은 거 아닌가요?”
“아니에요. 그거 좋은 거예요. 선생님께서 계속 ‘독촉’을 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논문을 끝낼 수 있었어요.”
“아 예. 그렇군요.”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선생님만큼 ‘독촉’을 잘 하는 사람을 보질 못했어요. 선생님은요, 진짜 ‘독촉’의 달인이세요.”
“아 예. 고맙습니다.”
통화는 대충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독촉’을 열심히 한 것이다. 순간 나는 대부업체나 카드 회사에서 채무자에게 ‘독촉’을 하는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나아가 그런 업계로 이직을 해야 되나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면 한 가지 이상의 기술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나에겐 ‘독촉’이었다. 그것은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의 재능일 것이다. 어쨌든 나에게도 기술이 있다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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