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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18년 5월 25일

   강경애는 황해도 장연(長淵)에서 태어나 1931년 잡지 <혜성(彗星)>에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고 1932년에 간도(間島)로 이주하여 단편소설 「부자(父子)」, 「채전(菜田)」, 「소금」 등을 발표하였으며 1934년 <동아일보>에 장편 『인간문제』를 연재하여 당시 사회에 있어서의 인간관계를 대담하게 다룬 여성 작가이다.

   「소금」은 1930년대 간도로 이주한 농민들의 궁핍상을 여성 주인공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준다. 1930년대는 일본의 세계정복의 야욕으로 인해 한국이 병참기지 역할을 했고 민족말살 정책이 시행된 시기이다. 이에 숨통이 막힌 농민들은 고국을 등지고 간도로 떠난다. 한국만 떠나면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잘 살 수 있을 거란 이들의 희망은 간도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간도에는 일제의 횡포와 더불어 중국인 지주의 착취가 있었다. 「소금」의 주인공인 봉염 어머니도 한국에서 남편, 딸(봉염),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으나 간도로 이주한 후 봉염이네 가족은 중국인 지주의 착취에 시달리고 자×단과 중국군대로부터 목숨까지 위협 당한다.

   용정에서 지주가 온다는 소식에 나간 남편은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설상가상으로 아들까지 집을 나가게 된다. 이후에 봉염 어머니는 어린 딸과 함께 살기 위해서 갖은 고초를 겪으며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비참한 처지가 된다. 봉염 어머니는 아들의 소식도 알 겸, 도움도 얻을 겸해서 옛 지주인 팡둥의 집에 찾아간다. 처음에 팡둥은 두 모녀에게 집안일을 시키며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준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서 자신의 아내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봉염 어머니를 겁탈한다. 봉염 어머니는 팡둥에게 겁탈을 당해 임신을 하였지만 어린 딸을 위해 팡둥에 의지해 팡둥이 집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팡둥의 아내가 봉염 어머니의 아들이 공산당으로 처형되었음을 알리고 이를 계기로 두 모녀는 쫓겨난다.

   팡둥의 집에서 쫓겨난 봉염 어머니에게 진통이 찾아온다. 봉염 어머니는 어느 중국인집의 비가 주룩주룩 새는 헛간에서 아기를 낳는다. 봉염 어머니는 출산을 봉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나 몰려오는 진통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옆에서 자던 봉염이가 깨어나 오히려 봉염 어머니의 출산을 도와준다. 봉염 어머니는 출산의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파를 씹어 먹는다. 봉염 어머니는 출산으로 인해 지친 몸과는 달리 삶의 희망을 얻는다.

   그 후 봉염 어머니는 유모로 취직해서 근근이 세 모녀가 살아간다. 봉염 어머니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기에 봉염이가 갓난아기인 봉희를 키운다. 봉염 어머니는 자식들이 보고 싶어 근무시간에 직장을 이탈하다가 발각되어 해고 처분을 받는다. 봉염 어머니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봉염과 봉희는 모두 죽는다. 봉염 어머니는 절망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기 위해 소금밀수에 가담하다가 공산당에게 걸리고 만다.

   “여러분! 당신네들이 웨 이 밤중에 단잠을 못 자고 이 소금짐을 지게 되었는지 알으십니까!”

   그런데 소금을 빼앗고 죽일 줄만 알았던 공산당들이 연설만 하고 봉염 어머니를 보내준다. 봉염 어머니는 남편을 죽이고 자식을 죽인 원수인 공산당이 소금자루도 빼앗지 않고 자신을 살려준 것에 의문을 품는다. 그 후 봉염 어머니는 사흘 만에 겨우 집에 도착해서 소금자루를 낡은 상자 안에 넣어서 방 한구석에 놓고 잠을 자게 된다. 이때 순사들이 찾아와 봉염 어머니를 체포한다.

   “이년! 너 사염을 팔라 다니는 년이구나, 당장 일어나라!”

   이하 결말 부분 22자 1행의 10행 분이 검열로 인해 삭제 당하여서 정확한 결말을 알 수 없다. 다만 봉염 어머니를 끌고 가면서 한 순사의 말을 통해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아마도 끔찍한 결말이 펼쳐질 것이다.

   나는 「소금」을 읽고 삶의 시련에 맞서는 여성의 강인한 생명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봉염 어머니가 여성이기에 겪게 되는 불행이 모성애로써 더 강해지고 그로 인해 삶의 희망을 얻고 자식을 잃었을 때에도 죽은 자식을 생각하며 다시 삶의 이유를 되찾게 되는 과정이 눈물겹도록 존엄했다. 최근의 ‘미투 운동’이나 ‘데이트 폭력’을 통해 드러난 여성의 불행에 나는 새삼 가슴이 저렸다. 자식(가족)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존재 중에 여성보다 더 나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아는 한 여성은 몇 안 되는 위대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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