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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성격은 민족성이 되고, 민족성은 나라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음식은 개인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또한 먹는 음식에 따라 사람들은 각각 다른 체취를 풍긴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라오스 등과 같은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그들이 먹는 음식이 다른 만큼 각기 다른 체취를 풍기기 마련이다.
나는 올해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지 10년이 된다. 그동안 다문화센터, 이주노동자, 중도입국자녀 등 다양한 목적의 재한 외국인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아시아권 유학생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살다 보면 버스 타는 방법, 약을 사는 방법 등 사소한 일에서부터, 사고가 나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일 등 여러 종류의 난감한 일들과 마주치게 된다. 나는 그런 어려움에 처한 외국인들에게 상담자가 되어주거나 도움을 주는 일이 더러 있다. 그러다보니 상담을 받거나 도움을 받은 후에 고맙다고 그들의 집으로 나를 초대하는 외국인들이 종종 있다. 자주 먹어봐서인지 전생에 외국인이었던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먹지 못하는 향이 강한 외국 음식도 곧잘 먹는 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베트남 음식은 맵거나 짜지 않고 담백해서 좋다. 어느 요리를 내놓든 접시 한가득 야채를 담아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더운 나라에서 온 베트남 학생들은 덜 익은 자두와 같은 신 과일을 좋아한다. 신 자두를 소금에 찍어 먹는 모습은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볼 때마다 신기하다.
스리랑카 음식은 한국 음식처럼 매운 것이 특징이다. 그래선지 스리랑카 학생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다르게 웬만한 한국 음식은 다 잘 먹는 편이다. 게다가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나라와는 다르게 스리랑카는 불교국가여서 돼지고기도 잘 먹는다. 언젠가 스리랑카 학생이 주는 빵을 생각 없이 받아먹었다가 눈물, 콧물을 다 뺀 적이 있었다. 학생이 고추씨를 가득 넣은 소스를 빵에 발라 나에게 건네준 것이다. 나는 켁켁거리며 눈물을 쏟아야 했지만 스리랑카 학생들은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육식을 즐긴다. 그래서인지 음식이 대체로 기름기가 많고 짠 편이다. 우즈베키스탄 음식 중에 ‘오쉬’라는 볶음밥 요리가 있다. 양고기와 양파, 당근 등을 볶다가 생쌀을 넣으면서 볶음밥 요리가 시작된다. 계속 저어서 생쌀을 익혀야 하니 ‘오쉬’를 먹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처음 우즈베키스탄 학생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오쉬’를 먹은 적이 있다. 초대한 학생이 ‘오쉬’ 요리를 시작하면서 계속 부엌과 방을 오갔지만 완성된 ‘오쉬’가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배고파 죽겠다고 불평을 해 보았지만 생쌀이 다 익어야 먹을 수 있으니,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에는 음식이 그렇게 늦게 나오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한국 거주 기간이 길어지면서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음식에 서서히 적응해 나간다. 유별나게 고향음식을 그리워하던 베트남, 스리랑카 학생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음식을 곧잘 먹게 된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은 세월이 지나도 우리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기름기가 별로 없는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뿐더러 무슬림들에게 금기시 된 돼지고기와 야채 위주의 한국 음식이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컵라면 하나에도 돼지고기라는 표기가 쓰여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고기뿐 아니라, 야채, 심지어 과자도 하랄 식품만 고집하는 학생들도 있다.
나라마다 음식은 다르다. 사용하는 재료가 다르고, 향신료가 다르고, 맛도 다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이 적응하기 어려운 한 가지 특징을 꼽으라면 단연코 요리 습관이 아닐까싶다.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의 집에 놀러 갔을 때이다. 학생들의 초대를 받고 그들의 집에 들어갔지만 어디에도 완성된 요리는 보이지 않고 두세 종류의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식재료만 잔뜩 쌓여 있었다. 손님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한 상 가득 푸짐한 요리를 차려놓는 한국 사람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분명히 저녁 먹으러 오라고 초대해 놓고 어떻게 음식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단 말인가. 심지어 저녁 7시에 초대를 해놓고 10시가 되어서야 요리를 시작한 적도 있다.
나는 몇 번의 초대를 받고 난 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식재료만 준비해 놓은 채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초대된 손님들이 모두 도착하면 그때부터 요리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초대 시간이 저녁 7시라는 것은 7시에 저녁을 먹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7시에 요리를 시작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손님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설명을 듣고도 나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여러 번의 고생 끝에 나는 요즘, 우리 학생들에게 식사 초대를 받으면 어느 정도 요기를 하고 집을 나선다. 그들의 집에 도착해서 몇 시간이나 배를 곯으며 음식을 기다리는 곤욕을 치르고 싶지 않아서이다.
우리는 반만 년 긴 역사동안 단일민족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 왔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국내 거주 외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서양인들이 아닌 아시아권 사람들이 한국의 거리에 넘쳐나고 있다. 이런 시대변화의 바람을 타고, 처음에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공단지역을 중심으로 한두 군데 아시아권 식당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요 몇 년 사이에는 시내 중심가는 물론, 대학가에도 외국인 식당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을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 식당이 더 다양한 메뉴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한식도 한류 붐을 타고 동남아, 유럽 등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 음식을 먹는 외국인은 한국과 한국인,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같은 이치로 우리가 외국음식을 먹게 되면 우리도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다문화 사회에서 음식은, 서로를 이해하고 이어주는 가장 쉬운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오늘 가족과 함께 한번쯤, 한식이나 서양식이 아닌 베트남 식당에라도 나서보자. 음식의 향과 함께 색다른 문화의 향기를 맡게 될 것이다. 그것이 좋든 싫든 변화의 바람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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