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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18년 11월 25일


   우리는 몰랐지만 우리가 도착한 2018년 8월 21일부터 22, 23일 사흘간이 인니 명절이라고 한다. 어제 저녁 6시부터 마을 스피커를 통해 시작된 코란 읽는 소리가 오늘 아침에는 4시가 좀 넘자 시작되었다. 인니의 설에 이어 두 번째 큰 명절이라는데 마을사람들 모두 아침 일찍 무슬림 사원인 모스크에 가서 기도한단다. 5시쯤 일어나 샤워를 하고 현관 앞 테이블에 나와 찌찌 씨가 가져다 준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오늘의 만찬을 위해 동네 부자가 기부한 소가 끌려가고 있었다. 선량한 눈망울에 마음이 아팠다. 코이룰과 리야디 씨는 아침 6시가 되기 전에 무슬림 전통복장으로 갈아입고 사원에 간다고 나갔다. 찌찌 씨는 사원에 가지 않고 아침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기도하러 가지 않는 모양이다. 명절이라면 우리하고 여행 가기보다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아침 기도만 같이 하고 각자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했다. 두 번의 명절 중에 한번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지만 우리의 추석과 같은 여름 명절은 각자, 그러니 우리와 여행을 갈수 있다고 했다.

    코이룰과 리야디 씨가 사원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후 우리는 함께 아침을 먹었다. 오늘도 코이룰 씨 어머니가 오셔서 아침상을 도와주셨고, 어머니도 함께 아침을 먹었다. 진량에서 4년 10개월 일했다는 코이룰 친구도 와서 아침을 같이 했다. 코이룰 씨의 아버지도 사원 기도를 마친 후 평복으로 갈아입고 이곳으로 오셨는데 훨씬 젊어 보였다. 저녁에는 무슬림복장, 낮에는 평복을 하신단다. 부모가 인근에 사는 자식들 집을 수시로 드나드시지만 특별히 폐를 끼치는 일이 없다. 그냥 한번 둘러보고 별일 없는지 확인하거나 자녀와 간단한 대화를 하고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사라지신다. 특별히 며느리가 시부모를 위해 상을 차리거나 차를 준비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인근에 살면서 그저 이웃처럼 지내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차를 마시며 잠시 쉬는 동안 코이룰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누구냐고 하니 예전에 함께 한국어 공부를 했던 이맘 씨라고 했다.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선생님이 오셨다고 전했다고 한다. 30여분 후에 이맘 씨는 어린 아들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선생님을 보러 왔다. 농사를 지어서인지 예전보다 그을린 얼굴에 코이룰, 리야디 씨와는 다르게 고생한 흔적도 보였다. 반갑게 인사하고 코코넛과 각종 열대과일을 먹으며 옛날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이맘 씨가 돌아가고 사원에 갔다 온 코이룰 씨는 마을 지도자격인 이맘에게 한국에서 선생님 부부가 왔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맘이 우리를 보고 싶다고 하여 산책 겸해서 함께 모스크로 갔다. 5분 거리의 사원에 이르니 사람들로 붐볐다. 아침에 내가 보았던 소는 수십 명이 모여앉아 각자 맡은 몫을 담당하듯 해체작업을 하고 있었고, 왼편에는 여자들이 평상에 앉아있거나 부근에서 삼삼오오 모여 낯선 이방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한국인들이 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어서인지 찾아와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환대에 감사의 인사를 했다.
    사람들의 안내로 평상에 오르니, 코이룰 씨 고모님이 차와 음식, 삶은 땅콩을 가져오셨다. 마을의 지도자 이맘을 만나 인사드리고 동네 어른들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우리가 보낸 몇 장의 사진을 보고 큰딸이 마치 국빈대접을 받는 모습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 우린 그런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맘님이 우리 이름을 물으시더니 잠시 후 마이크로 우리를 소개하였고 마을 주민들과 단체 사진을 찍는다고 광고(?)까지 하셨다. 남자끼리 여자끼리 여러 모임별로 사진을 찍고 이맘의 연세 90이신 할머니, 이맘의 아들(2~3살 정도), 코이룰 씨의 작은 아버지 등 사원과 관계된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오늘 잡은 소를 기증한 분도 소개시켜 주었다. 명절이면 마을 부자가 소와 양을 기증하고 고기는 해체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1kg씩 나눠준다고 하였다. 부의 재분배인 셈이다. 사람들은 순박하게 보였고 아이들은 처음 보는 우리가 마냥 신기한 듯 자꾸 쳐다보고 살며시 만져보기도 했다. 마을은 모스크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마치 지금은 산업화, 도시화로 많이 사라진 우리 한국의 마을공동체를 보는 듯 했다.

    모스크에서의 환대를 뒤로 하고 우리는 리야디 씨를 비롯하여 코이룰 가족들(코이룰씨 막내 여동생, 고1)과 함께 관광에 나섰다. 10시 50분 출발. 인니에 오면 꼭 맛있는 열대과일을 실컷 먹으리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서 제자들은 길거리에 차를 세우고 과일 가게에서 10만루피아어치 망고, 배, 사과를 한 봉지씩 샀다. 망고는 열대과일이니 원산지에서 먹어보고자 샀고 사과와 배는 농업전문가인 남편이 한국 과일과의 비교차원에서 맛을 보려고 샀다. 나도 예전에 나낭 씨가 한국의 사과를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나서 인니 사과를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차 안에서 먹어 본 인니 사과는 한국사과와 맛이 똑같았다.
    산이 별로 없는 인니에서 모처럼 산이 보여서 물어 보았더니 구능까뿌러산이라는데 석회암 산이란다. 한국인 사장이 석산을 개발 중으로 옆에는 거대한 시멘트 공장이 있었다. 산 하나가 거의 반이 파헤쳐져있었고 나머지 반도 곧 사라질 지경이어서 안타까웠다. 인니는 우리나라처럼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위주의 정책을 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가니 파푸마 해안가가 나왔다. 오전의 목적지인데 흰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고 바닷물도 깨끗했지만 수영복으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는 점벌 시의 외각 지역으로 지명이 정확하진 않다. 구글 사진에는 와투울로(Watu Wlo)라고 나와 있었다. 여기에도 아이스크림을 팔거나 과일을 파는 장사들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과일을 잘게 썰어 한국의 '된장'같은 소스를 뿌린 것이 있었다. 코이룰 씨가 각자 한 세트씩 사주어서 손에 들고 먹었는데 소스 맛도 좋고, 과일 맛도 좋았다. 인도네시아는 베트남처럼 열대과일이 흔한 나라여서 과일을 쉽게 많이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오랜 시간 차를 타고 온데다 과일도 먹고 물도 마셔서 화장실을 가야했다. 그런데 인근에 화장실이 없어 차를 타고 조금 나가 사원의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다. 화장실은 유료인데 한국에선 보기 힘든 형태였지만 코이룰 씨 집에서도 그렇고 예전에 라오스 여행을 갔을 때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좀 불편하긴 했지만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옆에 물통이 있어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용변기를 씻어 내리고 뒤 처리는 휴지 대신 물을 사용하여 씻은 후에 마지막에 발을 씻고 나오는 식이었다. 그나마 공용화장실은 각 가정에 있는 것처럼 좌식 변기가 아니라 입식이어서 편리했다. 화장실에 갔다가 차를 타고 쭉 더 오니 처음 해수욕장 들어왔던 곳으로 나왔다. 관광단지 구조가 원형으로 되어 있어서 한 바퀴 돌게 된 것이었다.
    해안가에는 식당들이 즐비했는데 2시 가까이 된 시간이라 점심을 먹으러 그 중 한 곳에 들어갔다. 코이룰 씨는 주인이 보여준 생선 중에 큰 놈으로 두 마리를 선택해 요리와 음식을 주문하였다. 매끼니 마다 생선이 있는 식단을 인니 사람들은 선호하는 듯 했다. 그러나 열대의 기온을 가진 나라에서 채소 재배가 수월할 텐데도 불구하고 베트남처럼 채소를 많이 섭취하지는 않았다. 점심상 차림에는 사람 수만큼의 물그릇이 나왔는데 리야디 씨가 마시는 물이 아니라 손을 씻는 물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먹기 전에 손을 씻고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라 우리도 그렇게 해보았다. 위생은 잘 모르겠지만 숟가락, 젓가락보다 손가락이 훨씬 편했다. 다만 용변을 보고 뒤 처리를 왼손으로 하니까 식사 때는 오른손만 사용해야 하는데 왼손잡이들은 좀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밥 먹는 평상 아래 어린 고양이가 얼쩡거리고 있어서 나는 남은 생선을 발라 고양이에게 먹였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왜 이리 밥 먹고 살기가 힘든 것일까......
    구운 생선을 손으로 먹는 인니식 점심을 제대로 체험하고 오후 3시경에 다음 여정에 올랐다. 차로 4시간 거리의 말랑. 일단 코이룰 씨 집에 가서 가방을 챙겨야 한다. 누라 씨가 나를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온단다. 누라도 우리와 함께 나머지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하고 호텔방 2개를 예약해 여자끼리 남자끼리 나눠 투숙할 계획이었지만, 집에 도착하자 문제가 생겼다. 찌찌 씨가 몸이 안 좋아서 여행을 가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10시간 이상 차를 타고 이동했으니 약한 몸에 얼마나 무리가 갔을까. 쉬는 것이 우선이라 급히 일정 조정을 해야 했다. 오늘 저녁은 코이룰 씨 집에서 머물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 말랑을 거쳐 리야디 씨 집으로 가기로 했다.

    제자들은 선생님한테 인도네시아의 여기저기를 구경시켜주고 싶어 했으나 인니에 와보니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우선 도로 사정이 안 좋은데다가 나라가 넓다보니 도시간의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새로 선출된 인니의 대통령이 기간산업 육성을 하느라 가는 곳곳마다 도로 건설이 한창이었는데 몇 년 후에는 이곳 교통 사정도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는 인니에 경관을 보러 왔다기보다 제자들을 만나러 온 셈이니 이런 제자들과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고 남편도 당신 덕분에 좋은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해 나를 안심시켜 줬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나는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코이룰과 리야디, 이맘을 만났고 이따가 누라가 올 것이고 내일은 수찌아니 씨 가족과 나낭씨 가족, 그리고 에리 씨를 만나기로 했으니 모두 7명의 제자를 만나는 것이다. 수원 과자공장에서 일해 한 달에 한번정도 과자를 한 박스씩 택배로 보내주던 하킴 씨와는 화상통화를 했는데 아내가 지금 임신 초기라서 차를 타기가 힘들다고 했다. 한국처럼 30분, 1시간 거리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다. 해피 씨는 현재 남편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운전을 못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올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 아닌 인니에서 인니제자들을 화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앞에서 만난 것과 다름없는 기분이 들었다. 하킴 씨도 해피 씨도 같은 기분이었으리라.
    집으로 돌아와 과일을 먹으며 쉬다가 저녁 8시 50분경 우리는 누라 씨를 마중하러 버스터미널에 갔다. 코이룰 씨 집에서 출발해 1시간 10분을 달렸다. 인니에서 지내보니 1시간 정도 거리는 이제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10시에 누라 씨를 만났다. 누라는 비행기를 1시간 타고, 3시간 시외버스를 타고 왔다. 비행기 값이 거의 한달 치 월급만큼 되는 걸 생각하면 고마운 방문이다. 누라는 한국에서 4년 10개월을 근로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지 3년여가 된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집을 약간 고치고 나머지 돈은 농토를 사서 동네 사람에게 임대하고 임대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화장품 판매업을 하면서 3개월 전부터 한국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단다. 워낙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가요는 모르는 노래가 없을 정도여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대단할 터이다.
    우리는 버스터미널 근처 Kencong에 있는 룸복식 식당에서 함께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아보카도 주스 등 음료수 각 1잔에 다섯 가지 각각 다른 인니 음식을 주문했다. 집에서 먹는 인니식 밥도 맛있지만 식당에서 다양한 요리를 먹어보는 것도 즐겁다. 음식은 대부분 밥에다 채소, 닭고기, 소스 등을 얹어 주었는데 이 사람 저 사람의 음식을 맛보며 먹었다. 제자들은 혹시 인니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한국 식당으로 가자고 제안했지만 우리 부부는 인니에 오면 인니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늦은 만찬을 하고 11시 40분에 코이룰 씨 집으로 출발해서 12시가 훨씬 넘어서 도착했다. 나는 남편은 혼자 편히 주무시라 말하고 누라 방에 들어와 침대에서 뒹굴며 인니 이야기, 한국 이야기를 하면서 어제에 이어 밤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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