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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19년 3월 25일


   인니 여행 셋째날(2018.8.23.) 우리 부부는 새벽 4시 30분경에 일어나 일찌감치 샤워를 했다. 여름이라곤 하지만 새벽 수돗물은 아직 차가웠다. 겨울엔 샤워가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코이룰 씨 집은 화장실과 샤워실이 각기 다른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는 데다가 화장실은 늘 물을 부어 씻어 내려서 항상 청결하다.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다. 다만, 찌찌 씨가 임신 했을 경우를 생각해서 좌식인 변기를 입식으로 바꾸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코이룰 씨한테 제안을 했다. 아침 6시 45분.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신 후에 코이룰 씨 부모님과 우리 일행(코이룰 부부, 리야디 씨, 어제 밤에 도착한 누라 씨, 우리 부부)은 현관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어제 가지 못한 말랑에 갈 예정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부모님들이 며칠 동안 청소하랴, 음식 준비하랴 고생하셨을 걸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 가득이었다. 언제 다시 이 분들을 뵐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말랑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라야 무마짱(Raya Lumajang)지역에 있는 휴게소에 내려 늦은 아침을 먹었다. 리야디 씨는 인근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했지만 나는 여행을 오면 길거리 음식도 먹어봐야한다고 고집을 부려 케밥(sapi)을 주문했다. 여섯 명이 테이블을 중앙에 두고 담소하며 과자도 먹고 다양한 종류의 케밥을 먹었는데 나름 정취가 좋았다. 제자들은 3시간 정도 더 가서 말랑에서 점심을 먹고 관광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무튼 외국 여행객답게 소고기 케밥 하나로 아침 요기를 마친 기분은 뿌듯했다.

    다시 차를 타고 여행길에 오른 우리는 이것저것 잡담을 이어갔다. 서자바에서 비행기를 타고 거금을 들여 선생님을 만나러 온 누라 씨는 한국어학원에서 한국어 강사를 하고 있는데 한가롭게 살다가 학원에서 수업을 시작하면서부터 3주 만에 몸무게가 4kg나 빠졌다고 한다. 가르치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나 보다. 귀국 전에 토픽 3급을 취득한 누라 씨는 대구에서 열리는 외국인 노래자랑 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한 전력이 있는 아마추어 가수이기도 하다. 찌찌 씨는 어제 저녁, 집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간 이후 푹 쉬고 오늘 아침에야 기력을 회복했다. 몸이 약한 찌찌 씨를 생각해서 오늘부터는 객식구인 남편이 제일 뒷자리에 앉기로 했다. 그동안 찌찌 씨가 맨 뒷자리에 앉아 고생한 것을 생각하니 진작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미안했다. 고생할 남편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말이다.

    드디어 말랑에 도착했다. 사람, 오토바이 행렬을 보니 기존 도시와 규모부터 달랐다. 시내 도로가 넉넉한 편도 2차선 도로임에도 차량 행렬이 만만치 않아 구간마다 교통정체가 생기고 있었다. 혼잡한 교통상황을 이용하여 찌찌 씨가 잠시 내리더니 ‘사우’라는 과일을 사왔다. 어제 바닷가 갈 때도 먹었던 과일인데 보기는 감자 비슷한데 즙이 아주 풍부하고 맛도 달았다. 손으로 과일을 두 쪽으로 갈라 검은색 씨(1~3개)를 빼내고 껍질만 남기고 먹는다. 단맛이 강해서 출출할 때 식사대용으로도 가능할 듯했다. 연달아 3개를 먹었더니 배가 불뚝 쏟는 기분이었다. 걱정과는 달리 남편은 짐 보따리를 뒷문과 발아래로 내리고 뒷좌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앉아 나름 편안한 자세를 취한 채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인지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말랑시 관광을 포기, 그냥 통과하고 다시 바투시 마저 지나갔다. 혼잡한 교통 사정만 기억나는 말랑에 비해 바투시는 거리도 있고, 산업도시 풍모도 보였다. 높은 산이 제법 길게 놓여 있어서 산이 거의 보이지 않던 인니의 새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

    12시 30분. 뮤지엄 앙큐트(Musium Angkut)에 들어왔다. 테마파크 같은 곳인데 물위로 여기저기 가게들이 즐비하고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아기자기한 여행상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몇 가지 테마를 구경하자고 했다. 시간은 이미 점심때를 넘겨서 배를 채우기 위해 각자 메뉴를 주문했다. 그런 와중에 나는 한국의 한 기관으로부터 오늘까지 어떤 일을 완료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리야디 씨의 맥북으로 인터넷에 접속을 시도해 보았지만 접속이 힘들 뿐만 아니라 필요한 정보들이 없어서 2시간여를 고생해야 했다. 일행들에게 너무 미안하여 다들 구경하라고 밀어내고 진땀을 빼가며 일을 진행하였다. 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지만 그래도 제시간에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일하느라 뮤지엄과 쇼핑몰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지만 작은 국토를 가진 한국에 비해 인니의 국토 면적이 만만치 않은 터라 수찌아니 씨 부부를 만나려면 2시 50분에는 출발해야 했다.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지만 그동안의 경험에 의해 남편과 나는 2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란 말을 믿지 않았다. 길이 험하다. 높은 산이 보이고, 도로는 이런저런 공사로 인해 차가 가다 서다 한다. 차가 서행을 거듭하던 중에 우리는 캄보디아에 있는 판냐 씨와 화상통화를 했다. 함께 일하고 함께 공부하던 판냐 씨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사업가로 잘 살고 있었다. 휴대폰의 작은 화면에 판냐 씨가 나타나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반가움의 탄성을 지르며 잘 있냐고, 결혼은 했느냐, 아이는 몇 명이냐 하며 안부를 물었다. 판냐는 자기 가게 안을 보여주며 모두 그립다고 말했다. 다음엔 프놈펜에 갈 것이라고 했더니 꼭 오시라고 화답을 한다. 한국에서 고생하던 제자들이 하나하나 자신의 고향에서 자리를 잡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한국어 강사로서 느끼는 또 다른 기쁨이다.

    산을 돌고 네비가 방향을 잘못 읽어 두 세 차례 길을 되돌아 블리따르 시에 5시 30분경에 도착했다. 드디어 수찌아니 씨 가족(남편, 두 아들, 조카)을 만났다. 우리가 늦는 바람에 이들 부부는 우리를 1시간 이상 더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인니인들에게 몇 시간 씩 기다리는 건 다반사여서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어엿한 사장님이자 두 아들의 엄마인 수찌아니 씨는 5년 전에는 우리와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러 다니던 수줍음 많은 아가씨였다. 수찌아니 씨는 대구에서 일하던 중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선생님인 나도 결혼식에 초대받아 참석했었는데 인니 선배들이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경전을 읽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충고를 해주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어 기다리면서 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결혼 얼마 후에 아니 씨는 남편과 함께 인도네시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도로상에서 간단한 조우를 하고 바로 수찌아니 씨 부부가 예약해둔 뷔페식당으로 갔다. 이들 부부는 각자 사업을 한다고 했다. 남편은 농약상을 하고 수찌아니 씨는 옷가게를 한다고 하는 데 제법 벌이가 좋다고 한다. 식사를 하면서 수찌아니 씨는 한국에서 일할 때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수찌아니 씨는 한국에서 일도 배웠지만 공장에서 사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고 했다. 즉, 일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사람에게 사장이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보고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동료로 대하고 오너나 직원이나 다 같이 잘살고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한국에서 배운 바대로 남편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내 가족처럼 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선은 선을 낳는가 보다. 수찌아니 씨는 똑똑하고 마음씨가 바르다. 그의 남편은 잘 생겼고, 착하게 생긴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다. 수찌아니 씨는 한국어 공부도 꾸준히 해서 작년에 인니에서 개최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한다. 부상으로 부부 한국여행권을 받았으나 일이 바빠서 가지 못했단다. 저녁식사 비용은 수찌아니 씨 부부가 계산했다. 사람 수가 많아서 돈이 제법 나왔을 터이지만 개의치 않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이들 부부는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 친구들과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리야디 씨 집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수찌아니 씨는 경제사정이 아주 넉넉해서 운전기사까지 두고 있는데 운전기사가 없었다면 오늘 밤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그 먼 길을 따라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내일 큰 아들이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리야디 씨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아마 오늘 밤에 돌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리야디 씨 집에 가다가 중간에 잠시 시장에 내렸다. 시장에는 여기저기에서 트럭에 과일이며 채소들을 실은 채 팔고 있었는데 흥정도 하고 맛도 보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한국의 시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제자들은 다양한 과일들을 맛보고 흥정을 하더니 커다란 두리안을 양껏 사서 차안에 실었다. 차내에 미묘한 냄새가 풍긴다. 밤길을 한참 달려 잠시 후에 리야디 씨 집에 도착했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리야디 씨의 아버님과 누나, 자형, 형과 형수들이 집안을 한껏 꾸미고 온갖 요리와 과일들로 집안을 가득 채워 놓았다. 만약에 리야디 씨 집에 오지 않고 다른 관광지로 여행을 갔더라면 손님을 맞기 위해 고생했을 리야디 씨 가족들에게 정말 미안했을 뻔 했다. 코이룰 씨의 부모님처럼 이분들도 우리를 위해 몇날 며칠을 청소하고 요리를 준비했으리라.

    나낭 씨 가족(아내, 아이들)도 오후 3시에 도착해서 이제나 저제나 하며 선생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낭 씨가 고향으로 돌아간 지 3년여의 세월이 흘렀지만 코이룰, 리야디와 마찬가지로 그는 예전에 내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내와 9살 난 딸 그리고 겨우 돌을 넘긴 어린 아들을 차에 태우고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오후 3시까지 7시간을 달려 선생님을 만나러 와줬다. 나야 사랑하는 제자를 만나 행복하기 그지없었지만 차 안에서 고생했을 나낭 씨 가족들에겐 정말 미안했다. 한국에서 일하던 당시의 나낭 씨는 늘 5년만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간다고 말했고 계약기간이 끝나자 자신의 신념대로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가족과 함께 너무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부부를 환영하기 위해 금세 마을에 사는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이 다 모였다. 이미 오면서 간단한 저녁을 먹었는데 가족들이 애써 차린 푸짐한 저녁상을 보니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음식은 하나하나 제각각 다른 맛으로 우리 부부의 소심한 저항을 무장해제 시켜 버렸고 한 접시정도는 게눈 감추듯 먹어 버렸다. 다시 몇 명의 청년들이 한국인인 우리를 만나기 위해 리야디 씨 집을 방문했다. 이 동네에는 유독 한국에서 근로한 청년들이 많았는데 그 인원이 20명 정도나 된다고 했다. 다들 20대와 30대의 건강한 청년들이었다. 청년들은 코코넛 화채와 과일을 먹으며 한국 이야기를 즐겁게 이어 나갔다. 이들은 한국말을 할 줄 알아서 우리와 대화를 나누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인니에 일자리가 많이 없어서 다시 한국에 가고 싶지만 요즘엔 인니 근로자를 일 년에 700명밖에 뽑지 않아서 한국에 가기가 힘들다고 푸념했다. 선생님이 초대를 해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근로자는 초대로 올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대답해 줬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친구들하고 수다를 떨던 수찌아니 씨가 방으로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무언가를 손에 들려주었다. 인니 전통의상 바틱 3벌이었다. 제자의 정성이 고마워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았다. 그리고 남편을 방으로 불러 함께 선물 받은 바틱을 입고 거실로 나와 모두에서 보여줬다. 가족, 친구 모두 잘 어울린다며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쳤다. 밤이 새도록 얘기를 나눈들 다 못할 이야기가 가득했지만 운전하느라 힘들었을 제자들, 기다리느라 힘들었을 부부와 아이들, 우리를 위해 청소하고 요리하느라 힘들었을 가족과 친지들을 생각해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제일 먼저 수찌아니 씨 부부가 내일 아들의 등교를 위해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귀가 길에 올랐다. 자정 전이었지만 리야디 씨의 아버지와 친척 어른들, 친구들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누라씨도 내일 새벽 5시 30분에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고, 나낭 씨도 내일 아침에 먼 길을, 그리고 코이룰 씨와 리야디 씨도 하루 남은 우리와 여행을 함께 해야 하기에 각자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취침 전 샤워를 하고 방에 들어온 나는 방 한쪽에 놓여 진 쇼핑백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찌아니 씨가 바틱 외에 다른 선물을 놓고 간 것이었다. 수찌아니 씨에게 옷도 받았는데 왜 또 이런 걸 두고 갔냐고 문자를 했더니 선생님께 드리는 작은 정성이라고 답했다. 부담스러웠지만 성공한 제자가 선생님한테 드리고 싶은 선물이라니 고맙게 잘 받겠다며 인사만 전했다. 착하고 선량한 사람과 맛있는 음식, 인니의 3일차 여정은 그리웠던 나의 옛 제자들을 만나서 반갑게 대화하고 추억하는 가운데 조용히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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