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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0년 3월 25일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목은 누구나 들어봤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은 책이 고전이라는 우스갯말도 있지만, 사실 고전은 역사라는 시간과 세계라는 공간, 수 세대의 인간들에 의해 검증된 인류의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책 몇 권을 읽음으로써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괴테나 셰익스피어 같은 특별한 인간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꽤 괜찮은 거래라 할 수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지금 내게로 와서, 삶의 매 순간 새롭게 읽히면서 유효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는 바로 그것이 고전이리라.
    톨스토이의 『부활』은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고전이라 할 만하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으로 이미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랐던 톨스토이는 50대 이후 정신적 위기를 겪으면서 과거 자신의 예술을 부정하고 소설 집필을 중단한다. 그러던 작가는 종교적 이유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박해받던 종파의 해외 이주를 돕기 위해 70대의 나이에 『부활』을 집필하게 된다. 이 작품은 예술가 톨스토이의 ‘부활’이자, 사상가 톨스토이가 남긴 최후의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제정 말기 러시아, 부유한 미혼의 네흘류도프 공작은 배심원으로 참여한 재판정에서 과거 자신이 버렸던 첫사랑 카츄샤와 조우하게 된다. 대학생 시절 그는 고모에게 들렀다가 그 집의 양녀이자 하녀였던 아름다운 카츄사에게 반하고 만다.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그 마음을 표현도 하지 못한 채 애틋하게 헤어지는데, 그 간절하고도 애틋한 청춘의 순간을 톨스토이는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 후, 군인이 된 그는 부활절 날 다시 만난 카츄샤를 꼬여서 하룻밤을 보낸 후, 백 루블을 던져주고 떠나버렸다. 임신한 카츄샤가 쫓겨나서 이리저리 전전하다가 매춘부가 된 것, 그로부터 몇 년 후 타락할 대로 타락한 그녀가 살인범 누명까지 쓴 채 자신을 버린 남자와 재판정에서 마주치는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면서도 어찌 보면 진부한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매춘부이자 살인범으로 재판정에 선 첫사랑을 보는 네흘류도프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는 넓은 영지와 막대한 유산, 결혼을 염두에 둔 귀족 처녀도, 유부녀 애인도 가진, 당시로선 지극히 ‘평범한’ 귀족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한때 열정을 바쳤던 카츄샤를 잊은 지는 오래, 러시아의 토지제도가 불합리하다고 외치던 대학생 시절의 정의감도 무뎌진지 오래, 오직 나태하고 사치한 일상에 젖은 배부른 귀족의 모습일 따름인 것이다.
    카츄사의 삶을 망친 데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네흘류도프의 반성과 매춘부 카츄샤의 갱생 정도로 이 소설은 이해되지만, 작가는 더 나아가 개인의 각성과 행동만이 사회와 인류 구원의 시작임을 역설한다. 카츄샤의 구명을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네흘류도프의 눈에 비친 러시아의 가혹한 현실, 모순적이고 부당한 재판 과정과 유형을 통해 인간이 만든 제도, 관습, 종교가 얼마나 왜곡되고 위험한지를 작가는 신랄하게 그려낸다.
    박노자 선생의 말처럼 톨스토이는 한국에서 가장 오해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최소한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톨스토이는 무저항 비폭력 평화주의자라기보다는 두려움을 모르는 혁명가이고, 지루한 설교가가 아니라 흥미진진한 이야기꾼이자 과격한 선동가였다. 이 작품은 특히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국가와 러시아 교회 양쪽을 겨눈 날카로운 칼이었다.


   그렇다면 소설에서 부활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작품에서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종교적 의미보다는, 나태하고 반성 없는 일상이라는 크나큰 ‘죄’로부터의 부활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출세와 부를 쫓는 무의미한 일상을 카츄샤를 범하고 버렸던 과거보다도 더 큰 죄악으로 여긴다. 소설은 익숙해진 일상의 삶으로부터, 그리하여 그것을 올바른 것이라고 여기며 눈감고 살아가는 모든 거짓으로부터의 부활을, ‘거짓’에 침잠되어 생각 없이 보내는 ‘죽은’ 삶으로부터 부활하라는 가르침이며, 이는 어찌 보면 구원에 대한 가장 과격한 프로파간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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