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 발행일 : 2020년 3월 25일


   “잘 갔다오께. 애들 잘 봐라”
   “그래, 잘 갔다온나.”
   아내가 해외로 출장을 떠났다. 그것도 6박 7일. 그 날은 봄비가 차갑게 내렸다.
   아내를 공항에서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장모님과 딸(6), 아들(5)이 서로 뒤엉켜 방과 거실을 휘젓고 다녔다. 아이들의 웃음과 장모님의 고함이 고요한 아침의 낭만을 무참히 깨뜨렸다. 장모님은 나를 보자 ‘아이고 무시래이.’라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집을 떠나셨다. 나와 아이들만 덩그러니 아파트에 남겨졌다.
   나는 짧았지만 강렬했던 그래서 길게 느껴졌던 육아의 기술을 총동원해서 나에게 주어진 일주일을 헤쳐나가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오늘 내일 그러니까 토요일과 일요일만 잘 버티면 그 다음엔 어린이집이 많은 수고를 덜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우선 비 오는 날 아이들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몇 군데 떠올린 후 먼저 신세계백화점의 트램폴린 파크 바운스로 갔다. 예전에 봉봉이라 불리던 곳인데 이제는 백화점에 초호화로 만들어져 있었다. 두 시간을 끊고 아이들과 들어갔다. 아이들은 이런 곳에 처음인데도 본능적으로 알아서 잘 놀았다. 아이들도 잘 놀고 중간 중간에 안전 요원도 있고 해서 나는 딱히 할 게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서리 쪽에 부모들이 앉아 열심히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나도 거기에 가서 등을 벽에 대고 푹신한 매트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았더니 천국에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쏟아졌다.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가끔 아이들이 와서 ‘미션 카드’라는 것을 주고 갔다가 다시 받아가곤 했다. 꿈같은 시간은 총알처럼 빨리 지나갔다. 예정된 두 시간이 지나고 매표소 겸 매점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미어터지게 많이 몰려 있었다. 아이들은 지쳐서 ‘아빠 목말라, 배고파, 밥 줘.’를 귀 따갑게 외쳐대고 있었다. 급한 대로 매점에 볶음밥이 있어서 세 개를 시켰다. 이런 데는 양이 적을 줄 알고 급한 마음에 이렇게 시켰더니 밥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밥 양에 비해 건더기는 당근이 점처럼 듬성듬성 박혀 있을 뿐 딱히 포인트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나도 급한 마음에 허겁지겁 밥을 퍼 먹었는데 먹을수록 목이 메고 밥 양은 계속 늘어났다. 그런 데다 배고파 곧 자지러지려던 아이들은 반도 안 먹고 귀한 양식을 남겼다. 아까운 마음에 싱거워 눈물이 비어져 나오면서도 꾸역꾸역 최선을 다해, 돈이 아까워 배 터지게 밥을 우겨 넣었다. 밥을 다 먹으니 아이들은 온 사방으로 분잡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폭발물을 해체해야 하는 특수요원처럼 내 마음은 다음 일정을 찾기에 급했다. 밖은 봄비가 마냥 더해가지만 사람이 넘쳐 습기가 극에 달한 이곳에는 1초도 더 머물 수 없었다. 황급히 밖으로 차를 몰고 나왔지만 비가 와서 갈 곳이 막막했다.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전쟁이라도 벌이는지 운전석을 뒤에서 발로 차고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그야말로 난리였다. ‘입 다무리라, 발까 차지 마라.’ 소리쳤지만 그럴수록 내 혈압만 올라갔다. 차에서 내려서 차를 번쩍 들어 올려서 마구 흔들고 싶었다. 결국 내가 살고 있는 롯데아울렛 내 실내놀이터인 챔피언에 들어갔다. 여기도 사람은 많았지만 신세계보다는 적었고 밖으로 나가기가 편해 공기가 한층 상쾌했다. 여기에도 두 시간을 끊고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다시 자유가 찾아왔다. 거기 붙어 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봄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메리카노는 그냥 따뜻한 맹물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부모들이 앉아서 졸거나 멍하니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나마 친구들끼리 온 테이블이 수다를 떨고 있어 활기가 약간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아내에게 아이들이 놀 때 찍은 사진들을 보고서를 상신하듯이 카카오톡으로 전송하고 두 눈을 감았다. 엉덩이가 어디든 닿기만 하면 무참하게 잠이 들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슬슬 지겨워졌다. 지겨워지는 마음과 함께 아이들이 다시 나온다는 공포가 복병처럼 급습했다. 그런 마음이 들어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나올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나오니 또 다시 갈 곳을 결정해야 했다. 하루가 일 년처럼 더디게 흘러갔다. 밖에는 여전히 봄비가 내리고 차에서는 다시 아이들의 전쟁이 펼쳐지고 시간은 아직 너무 많이 남았다. 다시 근처 상가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5층에 있는 ‘점핑랜드’에 갔다. 여기에서는 아예 20시간 정액권을 구매하여 아이들이 지쳐 쓰러져 잠이 들 때까지 놀리기로 했다. 다시 나는 자유의 몸이 되어 보호자 음료 쿠폰으로 아메리카노를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여기도 아메리카노는 맹탕이었다. ‘맥심’이 그리웠다. 여기는 우리가 사는 동네라서 그런지 아이들의 어린이집 친구도 많이 있어 아이들이 지치지 않고 오래 잘 놀았다. 그 모습을 보니 오늘은 대충 마무리 될 것 같은 달콤함에 웃음이 났다. ‘뭐, 별 것 아니구만.’ 나는 다시 아내에게 새로 찍은 사진을 전송하고 눈을 감았다. 나무의자에 오래 앉아서 잤더니 허리에도 쥐가 났다. 그럭저럭 저녁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목이 마르다고 이제 그만 나가자며 또다시 칭얼거렸다. 밖으로 나와 아이들의 등살에 밀려 우선 편의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각 한 개씩 샀다. 그리고 봄비를 맞으며 가까운 국수집에 갔다. 거기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콩국수 두 개를 시켰다. 내가 한 그릇 먹고 아이들에게 반씩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은 배가 많이 고팠는지 포크로 먹던 콩국수를 나중에는 손으로 먹었다. 나는 기력이 다하고 배도 고파 그냥 콩국수만 열심히 먹었다. 아이들이 한 손엔 아이스크림, 한 손엔 콩국수를 집어 먹다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는 설마 먹다가 잠들까 했는데 큰 딸이 콩국수를 입에 가득 넣은 채 씹다가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쥐고 얼굴을 옆으로 해서 식탁에 엎어졌다. 작은 애도 국수 그릇에 얼굴을 박고 깜짝 놀라 깨고를 반복하기에 안 되겠다 싶어 긴 의자에 눕혀 주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떻게 집으로 가야 하나. 식당에서 남 보기도 민망하여 식당 종업원에게 얘기하고 차를 몰고 와서 식당 앞에 주차했다. 소방도로에 차를 몰고 들어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작은 애를 먼저 뒷자리 카시트에 앉혔다. 큰 딸은 그때까지 콩국수 면을 입에 물고 있어 손으로 입 속에 든 면을 다 잡아 뽑았다. 손에 쥔 아이스크림은 내가 한 입에 먹었다. 찬 것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아까워서 그냥 삼켰다. 극적으로 아이들을 태우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니 집으로 올라갈 길이 막막했다. 나는 몸이 물 속에 빠진 것처럼 점점 무거워지고 사물이 흐려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 카트가 지하주차장에 있어 거기에 큰 애를 앉히고 작은 애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갔다. 여기에서 모든 일이 영화처럼 끝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애들을 목욕시키고 침대로 누이는 게 진정한 하루의 끝이었다. 아이들이 잠들어 있어 옷 벗기기가 더 힘들었다. 하의는 그나마 쉬웠는데 상의는 팔과 머리 때문에 빠지지를 않았다. 힘이 자꾸 빠지고 짜증이 나서 앉아서 상의를 잡고 뒤로 누워버렸다. 누우니 몸에 힘이 전부 빠지면서 전등이 희미해지더니 그대로 깜빡 기절해버렸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드니 아이가 옷이 뒤집힌 채 입과 콧구멍에 옷이 들어갔다 나갔다 했다. 잘못 했다간 아이가 질식할 뻔 했다. 아찔했다. 나는 다시 일어나 상의를 겨우 올려 벗겼다. 목에 단추가 있었는데, 미처 몰랐다. 아이를 한 명씩 데리고 샤워기에 물을 틀고 겨우겨우 씻기고 수건으로 닦고 새 옷을 입혀서 침대에 눕혔다. (지친다. 이 과정은 생략하자.)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이들은 깨지 않았다. 나도 씻고 침대에 누웠다. 얼굴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내 귀로 들어가 나를 다시 짜증나게 했다.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가까웠다. 아내였다. 전화를 받았다.

   “응, 잘 갔나? 피곤할낀데 말라 전화하노. 사진 봤제. 마카 다 잘 지내고 있다.”
   “오늘 어디어디 갔었노?”
   “신세계도 가고 롯데도 가고, 개안타, 애들이 말 잘 들어가, 힘 하나또 안 들었다.”
   “또 어디 더 갔노?”
   “어. 점핑랜드. 개안타카이. 피곤할낀데, 고마 쉬라”
   “내복 입히가 언가이도 마이 돌아댕깄네. 몬산다. 진짜”

   봄비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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