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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0년 9월 25일

   금동(琴童) 김동인(金東仁)은 1919년 동경 유학 시절 주요한, 전영택, 김환 등과 함께 문학 동인지 〈창조〉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평양의 대부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창조〉 간행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그는 1910년대 주조를 이루었던 춘원 이광수의 계몽주의 문학을 지양하면서 동인지 〈창조〉를 통해 문학의 예술적 독자성과 그 순수한 미적 가치에 관한 관심을 새롭게 제기했다.
    김동인의 부유한 성장환경은 그가 문학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써, 달리 말하면 도구가 아니라 순수한 가치로써 생각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서구의 새로운 사조를 폭넓게 수용하고 실험하는 소설을 발표한다. 대표적으로 자연주의와 탐미주의를 들 수 있으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은 인형조종술이라는 작법도 구사했다. 형식 면에서도 근대적인 수준의 단편소설의 틀을 확립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김동인은 8대에 걸친 대부호 집안의 출생이기 때문에 안하무인의 성격이 그의 작품 대부분에 인간을 경멸하는 태도로 나타났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감자』에 나오는 복녀와 같은 가난한 평민에서부터 『김연실전』의 김연실 같은 자칭 선각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작가의 모멸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 인식 문제에서 동시대의 작품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과 김동인의 『감자』를 비교하면서 현실 인식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도 받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김동인을 반동 부르주아 작가라고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짚고 넘고 가야 할 문제이다.
    김동인에게는 항상 오만불손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고, 그로 인해 그의 소설적 재능과 작품이 폄하되는 양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그의 부유한 생활환경과 오만불손한 성격이 소설 속에 묻어 나온다는 작가 전기적 비평이 성립되면서 전개된 비약일 수 있다. 비록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당시 일제강점기에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신지식인이 현실 인식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기에는 다소 미흡한 경향이 있다. 이 같은 결과는 김동인의 소설에 나타난 모습들을 지나치게 작가의 환경에만 국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가 당시의 현실 인식이 부족한 작품이고 작가의 부유한 환경과 오만불손한 성격으로 인해 나온 작품이라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다. 당시 한국은 일제강점기에서 경제난이 심각하고, 시대적으로는 근대로의 이행기에 있었다. 이농현상이 일어나고, 공업과 상업이 발달하고 있었다. 부유한 환경의 그가 몸소 가난을 체험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감자』에서 보이는 칠성굴 밖 빈민굴의 이야기는 실감 나게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더라도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는 평은 재고해볼 여지가 분명 존재한다. 『감자』에 나타난 현실 인식의 수준은 그의 문학사상에 비추어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김동인은 당시 보기 드물게 확고한 자기만의 문학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사실주의란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주의의 사명은 복잡하고 부통일(不統一)되고 모순(矛盾)되는 인생 생활을 단순화하고 통일화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소설을 실재한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것은 영상에 비유하자면 사진과 다를 바 없고, 실제라 하는 것은 있음 직한 사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비롯된 개연성이라는 의미에 부합되는 것이다. 즉, 소설의 기본원리에 충실하고 문학 본연의 예술성을 추구했다.
    김동인이 소설 속에서 그려내는 인생 문제는 역사적 현실이나 사회적 상황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인 면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 본질적인 인간의 모습을 통해 불변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노력했다. 여기서 말하는 예술적 가치는 작품의 내적 구조의 완결성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김동인이 초기부터 삶의 단면과 그 완결된 의미 추구에 기능적인 단편소설의 양식에 집착했다는 것은 이러한 그의 관심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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