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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 윙 윙
스마트폰이 느긋하게 울어댔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밥을 시켜놓고 한술 뜨려는 찰나에 온 전화라 밥을 입에 넣을까 그냥 받을까를 잠시 망설이며 스마트폰의 창을 보았다. 아버지였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대부분이 스팸 혹은 택배 전화이다. 그런데 아버지라니. 아버지도 점심시간에는 되도록 ‘전화해라’라고 문자를 넣고 기다리시는 편이다. 예감이 안 좋았다. 입으로 가져가던 숟가락을 밥그릇에 되돌려놓으며 전화를 받았다.
“수서행 기차표 두 장, 당장 끊어라.”
밑도 끝도 없이 울려 퍼진 이 말은 지극히 당황스러우면서도 불안했다.
전화를 끊고 보니 수서는 어디지 잠시 헷갈렸다. 기억을 가만히 더듬어 보니 수서는 서울이었고 SRT를 타야 한다. 지난번에 서울 출장이 있어서 SRT 앱을 설치했으나 다른 분이 기차표를 예매해서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SRT 앱을 열어보니 수서행이 있었고 가장 이른 시간으로 두 장을 끊어 캡처해서 아버지께 카톡으로 보내드렸다.
퇴근길에 서울에 사는 형이 전화가 왔다. 명절 때나 연락하는 사이라 형의 전화는 불안을 확신하게 했다.
“엄마, 위암이다.”
어머니가 암이라니 지난 일요일에 멀쩡하게 칠순 잔치를 하신 분이 하루아침에 암이라니. 쇠몽둥이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지금 세강병원에 가마 검사해놨던 거 뭐 줄기라. 그거 받아가 제일 빠른 걸로 부치라. 급하다.”
나는 차를 돌려 세강병원으로 갔다. 세강병원은 부모님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이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칠순 잔치할 때 내일 머리 털 나고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다고 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세강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위암 판정을 받아 아버지가 급히 어머니를 데리고 수서행 SRT를 타고 삼성병원에 가서 입원한 것이다.
나는 심해에 들어간 잠수부처럼 극심한 압력 속에서 세강병원에서 받은 물건을 삼성병원으로 택배를 보내고 내 일도 하면서 아버지의 사업을 잠시 맡는 등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다행히 어머니는 위암이 초기에 발견되어 복강경 수술을 했고 항암 치료는 안 받아도 된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놓았다. 그때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니는 엄마가 아픈 데 전화 한 통도 안 하나. 내가 니를 그래 키앗나. 아들 키아 봐야 아무 소용 없네. 끊어라. 흐흐흑”
다시 쇠몽둥이로 뒤통수를 맞고 심해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추운 겨울날 나와 형이 초등학생 1~2학년쯤 됐을 때 아버지가 늦게 오시던 날, 집에 쌀이 없어 형과 내가 배고프다고 투정을 부리던 날, 주인집에 가서 쌀을 밥공기에 담아 석유곤로에 안치고 단무지를 만들어 팔던 옆집에 가서 단무지를 얻어 밥을 차려주신 그런 여자였다. 생각해보니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서른 중반쯤이었다. 그 나이에 추위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식을 위해 이웃집에 손을 벌리던 모습이 생생하다. 내 나이, 이제 마흔 중반이지만 내게 그런 상황이 오면 나 또한 그녀처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어머니가 이제 늙고 아프다. 어머니가 남은 생을 편안하게 사실 수 있도록 나 역시 그때의 어머니처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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