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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1년 3월 25일


   2016년 12월 2일(금)에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학술대회 <근대 시기의 ‘낙중학’, 한주학파의 전개와 ‘주문팔현’>이 개최되었다. 이 학술대회는 2010년부터 시작한 ‘낙중학’ 관련 제7차 학술대회로서 조선 말 본교가 위치한 낙동강 중류 일대에서 ‘낙중학’을 부흥시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학파를 형성한 한주 이진상(1818~1886)의 흔히 ‘주문팔현’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표적 여덟 제자에 대해 ‘한주학’의 계승이라는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학술대회 당일 아침. 나는 긴장된 마음에 손이 달달 떨렸다. 12월 초, 때 이른 겨울 추위가 찾아와 긴장된 마음에 더하여 몸까지 움츠러들었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행사장으로 가서 학술대회 준비를 서둘렀다. ‘낙중학’ 학술대회는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의 고유 브랜드로 자리 잡아 대구 경북의 유생들과 학자들의 참여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나는 행사장의 좌석에 더하여 보조 의자를 행사장 뒤편에 최대한 배치하고 마이크 점검과 비디오 촬영 준비를 하고 개회식 사회 연습을 틈틈이 했다. 준비가 어느 정도 되고 있을 때 한국학연구원의 직원들이 발표자료집과 명찰, 다과 등을 가지고 와서 행사장 입구에 가지런히 차려놓았다. 이 학술대회를 빛내줄 발표자와 토론자들에게 내가 연락을 취하였기에 이분들은 나를 찾을 것이고 나는 이분들을 행사가 끝날 때까지 불편함이 없도록 잘 모셔야 했다.
    학술대회 시작 30분 전. 손님들이 한 분, 두 분 오시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여기 이동근 선생이 누구요?”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그분에게 가까이 다가가 “반갑습니다. K대학 L교수님이지요?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얼른 안으로 드시지요.”라며 좌석을 안내해드렸다. 여러 손님이 계속 나를 찾았다. “이선생이오?”, “주차권 한 장 주이소.”, “점심은 어디서 먹는교?”, “몇 시에 끝납니까.”, “저녁 만찬은 어디서 해요?.” 분주한 아침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분들은 목에 명찰을 걸고 있는데 나는 명찰이 없었다. ‘아! 그래서 다들 나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 찾고 찾아와서는 나인지 확인하는구나.!’ 나는 급히 행사장 입구 프런트로 가서 행정인턴에게 나의 명찰을 달라고 했다.
    “선생님 명찰은 안 만들었는데요.”
    “그게 무슨?”
    “선생님이 만들지 마라고 했잖아요.”
    “제가 언제?”
    “그라마 지금 제가 일부러 안 만들었다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손으로 써드리까요.”
    “그건 좀.”
    “그럼 그냥 하세요.”
    “예.”
    학술대회 시작 5분 전. 한 명의 토론자가 안 와서 걱정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개회식 사회를 보기 위해 행사장 내 사회자석 앞에서 그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뒷문에서 어색한 웃음을 머금고 머리를 긁적이며 나에게 다가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내가 기다리는 그분은 토론문을 기한 내에 보내지 않아 무던히도 내 여린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직감으로 내가 기다리던 그분임을 알았다. 토론문을 기한 내에 주지 못한 그것에 대해 미안함과 그런데도 믿고 기다려준 나에 대한 고마움이 공존하는 따뜻한 눈빛 때문이었다.
    “이선생님시지예? G대학 J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선생님.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하셨지요.”
    “말씀 편하게 하이소. 저는 혀비 동깁니다.”
    갑자기 뇌가 저렸다. 내가 겨우 생각해 낸 사람은 계명인문역량강화(CORE)사업단의 C교수였다. 그는 나보다 세 해 선배다.
    “그분은 저보다 선배신데.”
    “아?.”
    “예!”
    “아”
    “예”
    ‘낙중학’ 학술대회는 2017년 12월 8일(금)에 개최된 <일제강점기의 ‘낙중학’, 한주학파 재전 제자들과 영남 유현들의 활동과 사상>을 마지막으로 모두 끝이 났다. 조만간 낙중학 단행본도 모두 완간될 것이다. J와 C교수는 모두 소속대학 학과의 교수가 되었다.
    올해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가 발생한 지 2년이 넘게 지났다. 이제는 마스크를 안 쓴 얼굴이 낯설다. 학술대회도 대부분 비대면(ZOOM)으로 바뀌었다. 이것도 금방 익숙해졌다. 사람 많은 분주함, 사소한 다툼, 따뜻한 눈빛. 이제, 그 모든 것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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