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 발행일 : 2021년 5월 25일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을 비롯하여 중년의 여성들까지, 증가하는 국내 외국인 수에 비례하여 한국어 강사의 인기도 날로 치솟는다. 각 대학의 한국어학과 학부와 석·박사과정에서는 해마다 상당수의 한국어 강사들이 배출된다. 이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어디쯤일까?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강사로서의 삶은 녹록치가 않다. 일할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며 늘 다음 학기 재계약을 염려해야 한다. 유학생이 급감한 코로나19 이후에 사정은 더 어려워졌다. 늦은 나이에 한국어를 시작한 나는 얼마나 더 현장에서 일할 수 있을까…

    나는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는 편이다. 종종 외국인들은 나를 ‘한국에서 만난 가장 kind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나는 사람을 국적으로 또는 외모로 평가하지 않고 진심을 다하여 대한다. 아마 그런 나의 태도가 그들에게 통했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유일한 교수 방법이기도 하다.

    외국인 근로자나 유학생들은 한국에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이 많다. 한국인인 우리도 그럴진 데 그들이야 오죽할까. 주로 건강상에 문제가 생겼을 때, 교통사고가 났을 때, 또는 비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외국인 제자들은 나를 찾아온다. 예전에는 버스나 지하철 환승법, 쇼핑몰 이용하는 방법 등처럼 사소한 일에 관한 문의도 많았지만, 요즘 그런 문제는 친구들끼리 해결이 가능하다.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그들과 함께 한 사연도 점점 쌓여간다. 내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최근에 겪은 사연을 소개해 보고자 이 글을 쓴다. 이 이야기가 한국어 강사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021년 3월 15일 오전 출근길에, 우즈베키스탄 제자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오늘, 아기를 출산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자연분만을 원했지만 출산 예정일이 한참이나 지나, 의사가 더 늦기 전에 제왕절개를 권했다고 한다. 예전에 다른 일로 그와 통화를 하면서 왠지 그 아내가 건강이 안 좋은 것 같아, 출산 때가 되면 선생님한테 연락하라고 말해 두었던 것이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는 대로 병원으로 가겠노라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오후 3시경에 출산을 했을 것이라 기대하며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제왕절개를 담당할 여의사가 오지 않아, 아내가 수술은 고사하고 몇 시간 째 분만실에서 대기 중이라고 했다. 원래 그 병원은 평소에 항상 여의사가 대기하고 있어서 우즈벡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은 병원이었다. 우즈벡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아내의 출산을 남자 의사에게 맡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인이자 출산을 경험해본 중년의 여자 입장에서는, 분만실에 누워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불안에 떨었을 그의 아내가 안타깝게 생각될 뿐이었다.

    한 시간 후쯤 병원에 도착해보니 다행히도 한국어가 부족한 그들을 위해, 경북대 치과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우즈벡 친구가 통역을 돕고 있었다. 아침부터 하루종일 병원에서 대기하느라 그 친구의 얼굴도 초췌해 보였다. 다행히 그의 아내는 건강한 남자 아기를 출산했다. 출산을 지켜본 친구는 곧 집으로 돌아갔다. 방금 아빠가 된 제자의 얼굴에는 피곤한 가운데서도 기쁨의 미소가 넘쳤다.

    산모도 분만실을 나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나는 병원에 온 김에 유리창 너머로라도 아기 얼굴을 보고 가려고 병실로 함께 올라갔다. 우린 모두 아침부터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고생한 터라 음식을 먹기 위해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 와중에 침대에서 자꾸 피가 묻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제왕절개를 한 산모에게 이게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인지 알 수 없어, 간호사에게 건너가서 산모의 상태를 이야기했다. 간호사들은 병실을 오가며 산모의 상태를 계속 주시했다.

    시간이 지나도 하혈이 멈추지 않자 불안한 기운이 흐르고 산모는 다시 분만실로 옮겨졌다. 계속되는 하혈로 인해 긴급하게 수혈도 해야 했다. 병원 관계자들이 산모의 심장박동수가 심상치 않고, 심각한 하혈과 고열로 추가 조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대학 병원으로 옮겨 급히 수술을 하면 생명도 살리고 자궁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대학병원에 병실이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결혼한 젊은 우즈벡 여자가 자궁을 잃어 아기를 낳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다. 외국인 제자에게 일어나는 일 중에 나는 이런 일이 가장 두렵다.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제자를 대신해 선생님인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과가 일반적이지 않을 때, 정말 무섭다. 생명, 자궁 소실이라니… 나는 제자에게 산모의 상태를 설명하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각 대학 병원에 연락해서 구급차와 병실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제자는 내 말의 경중을 알지 못했다.

    조금 후에 상황을 들은 병원장이 나를 만나러 왔다. 그리곤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주었다. 맘이 급한 나는, 환자를 빨리 큰 병원으로 이송해 달라고 거듭 말했다. 원장은, 병원 측에서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설명을 끝까지 경청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큰소리로 야단치더니,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나가 버렸다. 아마도 병원장은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병원 관계자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겨우 경대병원과 연락이 닿았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병원 실무자, 간호사, 제자와 내가 환자와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원장은 맘에 들지 않았으나 관계자들이 산모를 위해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최선을 다해 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 저녁 6시가 넘어 경대병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산모가 열이 심한데다 코로나19 검사도 안 된 상태여서 음압병실로 가야 했지만, 음압병실이 비어있지 않았다. 구급차 안에서 수혈을 진행하면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20분쯤 지났을까……. 의사 여러 명이 부랴부랴 응급실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곤 이것저것 확인을 한 후에 산모를 싣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나는 한국어 선생이고, 이들의 통역을 위해서 수술실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말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환자 한 명당 한 명의 보호자만 병실 입장이 가능한 상황이어서 우즈벡 남편만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을 다투는 수술 과정에서 의사소통은 아주 중요하다. 제자의 한국어 능력을 알기에 나는 응급실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렸다.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데, 의사소통이 안 되는 우즈벡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병원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외국인과 말이 안 통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같은 한국인끼리 소통이 안 되는 현실이 더 갑갑했다. 다문화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대형 병원에서 외국인을 위한 통역자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물론 우즈벡 통역자가 의학전문 용어를 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일반인들은 한국어를 아는 외국인이 모든 영역의 한국어 어휘를 다 알 것이라 착각한다. 한국어를 잘한다고 생각되는 외국인이, 알고 보면 간단하고 쉬운 어휘만 사용한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즈벡 남편이 한국어를 알아듣는다고 해서 병원에서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다. 우리가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항공분야, 첨단 IT분야, 의학용어를 다 아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한국인이, 미국병원에 가서 영어로 소통을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이면 당연히 영어가 능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백인이라고 하더라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영어 사대주의에 물든 사람들에게 이제는 영어보다 한국어가 대세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참이 지나 결국, 서류를 잔뜩 든 의사가 응급실을 나와 급히 나를 찾았다. 수술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우즈벡 남편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 하려는 이 수술이 어떤 수술이고, 어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해 남편에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제자에게 쉬운 우리말로 설명해주고 동의서에 서명하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산모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무사히 끝이 났다. 생명도 살리고 자궁도 들어내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모의 열이 떨어지지 않아, 음압병실에서 지내며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1인 1보호자 정책 때문에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우즈벡 남편은,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밤을 보냈다. 나는 음압병동 산모 곁에서 하혈하는 피의 양을 체크하며(정말 힘들었다), 이틀 동안 음압병실에서 산모와 함께 지냈다. 산모의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고 출혈이 잦아들어 일반병실로 올라간 뒤에야 나는 집으로 퇴근할 수 있었다. 집에선 남편이 홀로 지내고 있어 미안한 맘이 가득했다. 그 후로도 일주일 동안 산모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매일 병원으로 출근하며 간호사와 의사, 우즈벡 제자 사이에서 통역을 도맡았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산모가 남편에게 말을 하면, 내가 그 우즈벡 남편의 말을 듣고 병원에 전달하는 방식, 또는 그 반대 방식으로 말이다.

    한국어 강사들은 한국어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을 만난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와 수준의 한국어 교재를 다룬다. 그래서 외국인이 어떤 한국어 어휘를 배우고 익히는지 잘 알기 마련이다. 나는 외국인 학생들과 병원에 간 경험이 아주 많다. 갈 때마다 나는 한국어 선생님이고, 통역을 도와주러 왔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들이 꼭 묻는 말이 있다. 우즈벡어, 베트남어, 스리랑카어를 할 줄 아느냐고. 아니라고, 나는 한국어를 한국어로 통역할 뿐이라고 말하면 그들은 대부분 시큰둥해한다. 그러다 진료가 끝날 때쯤에는 함께 방문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의 우수성은 이제 전 세계인들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류와 더불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세계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의 치솟는 인기에 비해, 한국어 강사의 전문성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대다수이다. 의사는 의학 분야에서 전문가이듯, 한국어 교육에선 한국어 강사가 전문가이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과 소통하는 방식에 있어서 한국어 강사만한 사람이 또 있겠는가. 의사, 변호사, 전기 기술자, 영어 강사, 한국어 강사… 이렇게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이 깊어지고 공유될 때 우리 사회 전체의 전문성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한국어 강사, 우리는 전문가이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동천관 408호 한국학연구원 actako@km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