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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1년 11월 25일


   나는 매일 학교가는 버스안에서
    항상 같은 자리 앉아 있는 그녈 보곤해
    하지만 부담스럽게 너무 도도해보여
    어떤 말도 붙일 자신이 없어

    [ZAZA 버스안에서]

    내가 대학에 가서 하고 싶었던 것은 A(Alcohol), B(Billiard), C(Cigarlet)가 아니라 D(Dormitory), R(Report), S(School bus)였다. 그러나 1997년에 일어난 IMF(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 1997년 12월 3일 ~ 2001년 8월 23일)의 여파로 대학에 가지 못했다(사실은 공부를 안(못) 했다). 육군 전역 후 공사판을 전전하던 8월의 어느 날, 온몸에 먼지와 페인트, 톱밥 등이 잔뜩 묻어 버스도 타지 못하고 가창에서 수성동에 있는 집까지 터덜터덜 걸어온 적이 있다. 내 얼굴은 뜨거운 햇살에 붉게 타오르고 온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그날 어머니는 우시며 공부를 하라고 했다.
    나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여 4년 만에 졸업했다(방통대는 졸업이 어렵다). 방통대를 다니며 제일 부러웠던 것 중 한 가지는 계명대학교 학생이었다. 계명대학교 동문에서 버스를 내리면 나는 위로 가고 계명대학교 학생은 직진했다. 그때 계명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길 간절히 원했고 그 꿈은 이루어졌다. 계명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많은 학생들과 함께 아름다운 캠퍼스를 거닐고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 꼭 하고 싶었던 스쿨버스를 드디어 타게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계명대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하면서 야간 강의가 있는 날이면 가끔 스쿨버스를 탔다. 스쿨버스를 타면 그 안락함에 시간이 꿈결처럼 지나갔다. 나이가 들면서 스쿨버스를 타는 게 계면쩍어졌고 차츰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기 시작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것조차 힘들어 나도 모르게 스쿨버스로 발길이 닿았다. 오랜만에 찾아간 어릴 적 동네처럼 포근함을 느끼며 스쿨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폭우는 여전했고 스쿨버스는 집 앞에 도착했다. 잠에 취해 내리려고 하는데 스쿨버스 기사가 나를 멈춰 세웠다.

    “학생임니까?”
    “아니오. 강사인데요.”
    “강사는 스쿨버스 타면 안 됩니다. 대학원생도 못 타게 하는구만.”
   

    “아 예, 죄송합니다.” 나는 낯이 뜨거워져 폭우에 옷깃이 젖는 줄도 모른 채 집으로 달려갔다. 그 후로 스쿨버스 근처에는 얼씬도 안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는 한국학연구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 몇 일 년 간은 일이 서툴고 어설퍼 적응하느라 힘이 많이 들었다. 몇 년간 혼자 다니면서 강의만 하다가 조직에 들어오니 동료들과 소통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져 집에 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한국학논집』이 발간되어 하루종일 책을 포장하고 도서관, 영암관, 우편수발실, 우체국으로 발송하고 나니 온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연구원에 복귀하여 다른 일도 마무리하니 퇴근이 평소보다 조금 늦어졌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오랜 친구처럼 스쿨버스가 정차해 있길래 나도 모르게 올라탔다. 창가 측 맨 앞자리에 앉자마자 그 포근함에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집 앞이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내리려고 하는데 스쿨버스 기사가 사람들 다 내릴 때까지 잠깐 기다려라고 했다. 내릴 학생이 다 내리고 나니 스쿨버스 기사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눈은 충혈이 되어 있었고 피곤해 보였다. 그 눈으로 나를 향해 레이저를 쏘는 것처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이 모습은 오래 전에 교사나 선배에게 폭행을 당할 때의 기억을 소환했다. 머리가 ‘띵’하고 눈이 ‘멍’하고 귀가 ‘징’했다. 이런 기분이 느껴지면 그 다음엔 어김없이 눈에서 번갯불이 튀고 ‘징’소리가 더 오래 귀에서 울려퍼진다. 나는 눈을 감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만 해도 내가 누구를 때리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이미 상대 얼굴은 피떡이 되어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의식적으로 나의 손과 발이 상대의 얼굴에서 마음껏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상대의 손과 발을 피한다고 할지라도 내 얼굴은 피떡이 되어 무릎이 꿇려 있을 것이다. 나는 몇 대 맞더라도 이 시간이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학생임니까?”
    “아니오. 직원인데요.”
    “직원은 스쿨버스 타면 안 됩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저번에도 직원이 타가, 내가 타지 마라 캤는데, 그 사람 맞지요?.”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타겠습니다.”
    “내가 타지 마라 카마 타지 마야지. 와, 진짜, 사람 열 받게 하네. 와, 내 진짜, 이번에는 절대 그냥 못 넘어갑니다. 학교에 보고하겠습니다.”

    나는 모든 걸 체념하고 멍하니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에 힘을 주어 나의 눈을 계속 쳐다보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이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나는 그 지시에 따라 하차했다. 그 날 이후로 학교에서 무슨 조치가 있을 것 같아 몇 주간 마음을 졸이며 처분을 기다렸다. 다행히 학교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 후로 스쿨버스는 물론이고 기사들이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는 광경을 보면 멀리 돌아서 갔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스쿨버스 운행이 중단되었다. 나 또한 아내의 권유로 작은 차를 한 대 샀다. 스쿨버스야! 이제 안녕. (이동근 dk8153@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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