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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은 철저한 리얼리즘적 기율에 의해 시대의 모순과 근대사에 대한 심원한 통찰력을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상에 대한 작고 따뜻한 시선을 아울러 갖추고 있는 작가이다. 그가 문단의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 바로 장마(1973)이다. 장마는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으나, 단순한 비극에 그치지 않고 감동적인 화해의 모습을 형상화해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밭에서 완두를 거두어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작품의 서두 부분이다. 작품의 제목이면서 전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소재인 장마가 나타난다. 작품 전체를 휘감고 있는 장마의 분위기와 더불어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완두이다. 작품 초부터 등장하는 완두가 작품의 끝까지 나타난다. 주로 외할머니의 소일거리로 완두가 쓰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을 차차 살펴보면서, 장마와 완두에 나타나는 상징성도 살펴보기로 한다.
서두에 나타나는 중요한 사건은 바로 외삼촌의 전사 통지이다. 국군 소대장으로 복무 중이던 외삼촌이 죽게 되고, 집안은 온통 울음바다를 이룬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이모의 정신적인 충격은 실로 대단하다. 외삼촌은 외할머니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더 쏟아져라! 어서 한번 더 쏟아져서 비옷새에 숨은 뿔갱이 마자 다씰어가그라! 나무 틈새기에 엎딘 뿔갱이 숯뎅이같이 싹싹 끄실려라! 한번 더, 한번 더, 옳지! 하늘님 고오맙습니다!"
외삼촌의 죽음으로 정신적 충격을 심하게 받은 외할머니의 분노는 외삼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인민군에게 미치게 된다. 그래서 장마가 계속되는 하늘을 보면서, 이렇듯 악담을 마구 퍼붓는다. 그런데, 할머니의 아들인 삼촌은 인민군이다. 사돈이 함께 사는 집에서 자식들의 이념은 두 가지로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아들에게 악담을 퍼붓는 외할머니를 할머니는 그냥 두지 못한다. 결국 집주인인 할머니가 외할머니에게 나가라고 압력을 가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작품의 중심적인 갈등 구조를 이룬다. 한 가족이면서도 이념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올해 10살인 주인공의 눈에 여과 없이 비치게 된다. 한국전쟁이 낳은 불행은 전쟁 후에도 계속 남아 민족을 갈라놓게 만드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북에서 우리 마을로 피난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이 하나가 맥고모자를 눌러쓴 어떤 사내와 함께 우리들 노는 장소에 나타났다. 온 얼굴이 버짐투성이인 그 아이는 한여름인데도 때가 까맣게 낀 장구통배를 득득 긁던 손을 들어 나를 가리키면서 사내에게 뭐라고 짤막한 말을 했다. 그러자 사내가 윗얼굴을 깊숙이 가린 넓은 챙 밑으로 나를 유심히 쏘아 보았다. 이북 아이는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꺼내주는 무엇인가를 받아쥐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토끼처럼 달아나버렸다. 맥고자의 키큰 사내는 똑바로 나를 향하고 다가왔다. 검게 그을은 살갗, 날카롭게 굴리는 부리부리한 눈망울, 그리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곧장 목표물을 향하는 대담한 그 걸음걸이가 내게는 어쩐지 위압적이었다.
어린 주인공에게 수상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경찰이다. 어린 주인공으로부터, 인민군인 삼촌의 행방을 알기 위해 회유하고 있다. 능숙한 솜씨로 설득하고, 초콜릿을 미끼로 유혹하는 바람에 주인공은 삼촌이 집에 다녀간 사실을 발설하게 되고, 그로 인해 아버지가 잡혀가는 수난을 겪는다. 이념의 팽팽한 대결 구도로 인해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의 순진성마저도 무참히 짓밟히고 만다.
산속에 은거하면서 북으로부터 병력지원을 기다리던 삼촌이 집으로 내려오게 되고, 아버지는 자수를 권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의 실수로 인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념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 죄책감이다.
행장을 차려 삿갓 위에 유지로 된 갈모를 받쳐 쓰고 빗속을 나서는 아버지 등뒤에서 할머니는 가소로워 죽겠다는 내색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았다.(중략) 일이 이렇게 되어 할머니는 어느 하루로 날을 받아 쌀말이나 머리에 얹고 용하다는 그 소경 점쟁이를 찾아나섰던 것이다. 늦은 저녁이 되어 할머니는 갈 때와는 사람이 다르게 혜안을 극구 칭송한 다음 그를 대리하여 놀라운 신탁을 전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손가락을 꼽아가며 고대하던 그날이, 삼촌이 집에 다시 돌아오기로 되어 있다는 그 ‘아무 날 아무 시’가 인제는 당장 며칠 눈앞의 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빨치산과 경찰과의 격렬한 전투가 한차례 이루어지고 난 다음 빨치산의 희생자가 많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삼촌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읍내로 나서게 된다. 여기에서 할머니는 아들의 귀환을 믿고 점쟁이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는 삼촌 귀환의 날을 받아오게 된다. 그날부터 삼촌을 맞이하기 위한 분주한 준비가 계속된다. 단지 점쟁이의 소견만으로 모든 희망을 걸고 있는 할머니의 고집으로 인해 가족들은 몸살을 앓게 된다.
마침내 그날은 오게 된다. 그러나 삼촌은 오지 않고 구렁이만, 한 마리 나타나게 된다. 할머니는 충격을 받아 기겁하고 쓰러진다. 동네 사람들은 소란스러워지고, 아이들은 구렁이에게 돌을 던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선 사람이 외할머니였다. 그는 모든 혼란을 수습하고 마침내 구렁이도 몰아내게 된다. 구렁이가 삼촌의 환생으로 해석한 샤머니즘적인 신앙에 근거해서 주술적인 힘을 얻어 구렁이를 몰아낸다. 물론 머리카락을 태우는 물리적인 힘도 한몫했다. 이렇듯 혼란이 수습되고, 이 과정을 전해 들은 할머니는 진심으로 외할머니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사과하게 된다. 그리고 고마움을 감추지 못한다.
"고맙소."
정기가 꺼진 우묵한 눈을 치켜 간신히 외할머니를 올려다보면서 할머니는 목이 꽉 메었다.
"사분도 별시런 말씀을 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병고와 싸우신 할머니는 끝내 돌아가시게 된다. 돌아가시기 전에 주인공의 지난날을 모두 용서해 주셨다. 이처럼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용서된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한 낫 꿈과 같은 것을 무엇을 위해 민족끼리 싸움을 벌이는 것일까? 진정한 화해와 상생의 길은 아주 가까이 존재하며, 그것의 계기가 단지 어려울 뿐이다. 앞에서 지적한 완두콩도 한 껍질 속에서 알알이 다정하게 붙어있는 한 가족이 아닐까 한다. (이동근 dk8153@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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