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자연의 하나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닌 대학교 국문학과에서는 매년 가을 '반월의 밤'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내가 신입생이었을 때 이 행사에서 도종환의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이라는 시의 낭송을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시크릿 가든이나 유키 구라모토 부류의 뉴에이지 음악과 함께 강당에 울려 퍼진 이 시 낭송은 짧지만 강렬해서 청중들을 가을밤의 낭만 속으로 충분히 매료시킬 만했다. 주위는 숨을 쉴 겨를도 주지 않을 만큼 정적에 휩싸였고 시 낭송이 끝났을 때야 비로소 참았던 숨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박수 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이 경험이 너무나 감미로워서 시 낭송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는 벙거지를 쓴 여인을 눈에 담아 두었다.
"저도 시 낭송을 배우고 싶어요."
가을밤의 열기가 사라지고 한겨울의 눈 내리는 날에 떠난 문학 답사에서 그 여인을 다시 만났다. 그날은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가는 여정이었는데 눈이 내려 마음이 무겁고 불안했다. 부석사를 함께 오르면서 그녀와 시 낭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눈이 내리는 소백산맥의 절경은 일생에 한두 번 정도 볼 수 있어요."
그녀는 시인이며 시 낭송가였다. 등단작가이며 시 낭송 대회 입상도 했다. 그녀와 함께 시낭송회를 만들어 학우들을 모집했다. 시 낭송을 듣는 것은 쉬웠지만 하는 것은 역시나 어렵고 힘들었다. 시 낭송은 시를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시에 맞는 음악을 선곡해서 거기에 맞춰 시를 다시 재단하여 감정을 극대화하여 낭송해야 했다. 시를 외우는 것부터 음악에 맞추어 낭송하는 것까지 그 모든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특히 감정을 극대화하는 것은 노력 이상의 열정을 요구했다. 그녀는 다음에 열릴 ‘반월의 밤'에 우리를 올리기 위해 무진히 애를 썼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투기도 하고 낙오하는 사람도 생겼고 신입생이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어느새 푸르른 여름이 가고 노란 나뭇잎과 함께 '반월의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근 씨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해요. 동근 씨가 이 시를 낭송하면 목이 타는 그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시는 1975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군사독재정권의 강압적인 통치에 맞서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담아 노래한 작품이다.
"저는 다른 시를 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는 어때요? 동근 씨가 이 시를 낭송하면 왠지 느낌이 살 것 같아요."
이 시는 1967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반제국주의와 분단 극복의 단호한 의지가 응집된 참여시이다.
"저는 김춘수의 ‘꽃'을 하고 싶어요."
"그 시를 동근 씨가 하면 느낌이 죽을 텐데요."
내가 몸에 살이 많아 더워 보이고 보면 살을 뜯어버리고 싶어서 ‘타는 목마름으로'이나 ‘껍데기는 가라'를 추천한 것 같다. '꽃'은 '꽃사슴'처럼 잘 생기고 분위기 있는 남자나 목소리가 곱고 외모가 수려한 여자가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보기와 다르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여성적이어서 남성적인 울림이 강한 참여시에는 감정 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시를 낭송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드디어 '반월의 밤'이 시작되고 나는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무대에 당당히 올라섰다. 내가 선곡한 Bill Douglas의 Hymn이 나를 이끌어 주었다. 이 곡은 KBS Classic FM '당신의 밤과 음악'의 시그널 뮤직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동근 dk8153@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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