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는 오래전에 심폐소생술을 제대로 배웠다. 그래서 그는 수료증을 가지고 있다. 그가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J가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안다고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흐릿함 속에 분명한 것은 그의 동생이 예전에 아팠다고, 지금은 괜찮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라고, 알아두면 좋겠다 싶어서 문득 교육을 받아야겠다 마음먹었다고 했다. 툭 던지는 말인데도 그가 얼마나 동생의 건강에 마음 쓰고 있는지 짐작되었다.
J가 가진 입버릇 중에 “귀찮아”가 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인가 싶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봐 겁이 나서 물어보지 못했다. 그를 오래 보니 알게 되었다. 그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나 기분 나쁨을 정리하는 말로 “귀찮다”를 쓴다. 이제 그것이 슬프다, 짜증 난다, 화난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힘들다 등을 대신하는 말임을 안다.
“귀찮아”로 많은 기분을 전달하는 J는 아이러니하게도 귀찮을 수 있는 일을 어렵지 않게 한다. 타인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데에 큰 고민을 하지 않는다. 길을 가다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그 아래 깔린 사람을 보고는 바로 달려든다. 오토바이 무게가 꽤 나가니 나 혼자서 못 움직이겠다 가늠하지 않는다. 자신의 팔이나 손이 바닥에 쓸려 상처가 날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사람의 안전을 확인하고 신고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는 끝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옷 한 번 툭 털고 만다.
그는 그렇게 타인의 영역에 쉽게 들어간다.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가 대단하고 멋지다.
언젠가 허리춤에 긴 윗옷이 들어간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바닥 어디쯤을 초점 없이 더듬다가 앞 사람과의 간격을 지키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그 모양새가 보인 것이다. 옷 색깔이나 소재를 아주 잘 맞춘 옷차림이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옷매무새를 정리하다 잘못한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면 난감하지 않을까.
나는 그때부터 고민했다. 쓱 지나가면서 옷 끄트머리를 당겨볼까, 말씀을 드릴까, 말을 건네게 되면 불러야 하나, 어깨를 두드려도 될까.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 기분 나쁘면 어쩌나, 부끄러워하겠다, 놀랄지도 모른다, 그래도 더 있다가 알면 그게 더 싫을 듯하다, 다른 사람이 누가 말 안 해주나 하는 더 많은 생각이 엉켰다. 몇 걸음 더 가면서 나와 다른 방향으로 그 사람이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그 사람을 불렀다. 저기요. 그 대신 앞에 가던 옆 사람이 돌아본다. 어깨를 두드릴 수밖에 없다. 톡톡. 저기요. 이번엔 그가 돌아본다. 외투가 바지에 하는데 그가 바로 눈치채고 아이고 한다. 그러고는 고맙다, 조금 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하며 옷 정리를 한다. 나는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다. 제대로 해야 하니 내가 살피고 그는 나를 보며 됐냐는 눈짓을 한다. 예.
별일 아닌데 어색하다. 나라면 알려주는 게 더 좋을 것이다 하면서도 그 사람은 다를 수 있다고 멈칫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모험이었다.
며칠 전 길을 건너려고 서 있었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신호가 바뀌었나 힐끔대고 있었다. 오라이오라이. 자전거를 타신 어르신이 내 앞에 계셨다. 저거 보라 하신다. 파란색. 신호등이 바뀐 것이다. 아. 뭐가 그리 재밌노 하시며 웃으신다. 고맙습니다 하고 따라 웃었다. 내게 오시느라 한껏 꺾인 자전거 방향을 틀고 같이 길을 건넜다.
J에게 아까 길에 서 있는데, 하고 이야기를 했더니 길 다닐 때 앞을 안 본다고 야단이다. J의 넓은 오지랖이 나에게 와닿는다. 기분이 좋다. 그는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다. J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J와 J가 일으켜 세운 사람, 나와 옷매무새를 점검한 사람, 신호가 바뀌었으니 건너라는 어르신과 나는 그렇게 서로에게 오지라퍼가 되면서 살아간다.(E-mail: moony3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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