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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생산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어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청년들의 3D 업종 기피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어 외국인노동자 없이는 제조업이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국인노동자들은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을 가지고 한국에 찾아온 사람들이다. 일꾼이 필요해서 우리가 불러들인 사람들이지만 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일반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오히려 혐오감이 예전보다 상승했음을 느낀다.
나는 몇 년 전까지 평일에는 대학 등의 공공 기관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고 주말에는 교회의 한 강의실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위한 한국어 수업을 수년 간 이어왔다. 그러다가 2019년 베트남으로 가게 되었고 내가 없어도 한국어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내가 가르치던 외국인노동자들을 지인의 교회에 소개를 해주고 떠났다. 2020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라 더 이상 한국어 교실을 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팬데믹을 겪는 몇 년 동안 외국인노동자들과의 관계가 많이 소원해졌지만 여전히 잊지 않고 연락 오는 친구들이 있다.
얼마 전에는 미얀마 외국인노동자와 화상통화를 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일한지 10여 년이 넘었고 지금은 대구를 떠나 수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대구에 친구를 만나러 오거나 내가 서울에 가게 되면 가끔 만나서 밥을 먹기도 한다. 자주 통화를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번 통화를 하게 되면 온갖 수다를 떨게 된다. 그가 남편의 안부를 묻기에 치킨 사러 나갔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선생님, 나는 한국에 와서 몇 년 동안 치킨 사 먹는 걸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말인즉슨, 미얀마에서는 외식을 하지 않고 늘 집 밥을 먹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저녁이나 야식으로 치킨 또는 피자를 배달해 먹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말로 주문하는 것이 어려운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하는 말이,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제일 힘든 것이 공장 사람들하고 밥을 먹을 때였단다. 아저씨들은 대부분 국밥을 즐겨 먹었는데 미얀마에는 국에 밥을 말아먹는 문화가 없단다. 왜 밥을 물 같은(음식이 아닌?) 국에 말아 먹는지 이해도 안 되고 그렇게 먹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 아저씨들은 그렇게 먹어야 한다고 꾸역꾸역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물론 지금은 미역국도 잘 먹고 해장국이나 갈비탕도 찾아서 사먹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몇 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간 스리랑카 노동자 루완이 생각났다. 루완과 나는 병원 진료를 보고 난 후에 배가 고파 점심을 먹으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문을 열기에는 좀 이른 시간대였는지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죽집이 있길래 나는 루완을 데리고 죽집에 들어갔다. 아침도 먹지 않고 나온 터라 나는 속이 편한 죽을 주문하고 루완에겐 비빔밥을 주문해 주었다. 음식이 나오고 내 죽을 바라보던 루완이 “선생님, 이게 무슨 음식이에요?”라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감기에 걸려서 입맛이 없거나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 아픈 사람들이 죽을 자주 먹는다고 대답해주었다. 내 말을 들은 루완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는데 영문을 모르는 나는 한동안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진정이 된 루완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지난 5년간 죽기 살기로 일만 했다고 한다. 더운 나라에서 온 그는 겨울철에는 여지없이 감기에 걸리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고향에서 엄마가 끓여주시던 죽이 그렇게 생각나더란다. 그는 한국에 죽이라는 음식이 있는지도 몰랐고, 식당에서 사 먹을 수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돈이 없는 형편도 아니었다. 그러나 루완은 마냥 엄마가 해주시던 고향의 죽을 그렇게 그리워했다는 것이다.
나와 통화를 한 미얀마 노동자는 이제 한국 생활에 완전히 적응을 해서 사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 주로 공장 식당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고, 주말에는 외출을 하기 때문에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기도 한다. 하지만 미얀마에서 온 다른 근로자들은 아직 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주로 고향 음식을 요리해서 먹는데 퇴근해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요리를 직접 해 먹는 일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 친구가 보기에도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거나 대충 만들어 먹는 음식이 영양이 있거나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주말에 친구들과 쇼핑이라도 나가는 날에는 주로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점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 햄버거가 맛도 있고 간편하기도 하지만 거기엔 음식 사진이 걸려 있고, 음식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어서 ‘1번’이라고 쉽게 주문이 가능한 것도 이유였다.
최근에 대구에서 일어난 일이다. 달성군 논공에 위치한 필리핀인 교회에, 일요일 예배 도중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미등록노동자들을 체포해갔다. 경찰들은 항의하는 목사님과 한국인 교인들을 무시하고 한 명 한 명 조사를 벌였고 기어코 미등록노동자들을 체포했다. 친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들으니 요즘은 경찰들이 공장 내부는 물론이고 외국인노동자들이 생활하는 기숙사까지 급습해서 체포한다고 한다. 늘 단속이 있어왔지만 요즘처럼 살벌하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단속하고 잡아가는 일은 없었다는 게 외국인들과 이주노동자센터장의 주장이다. 이렇게 잡혀간 미등록노동자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보호소로 보내지고 개인의 은행 관련 일이 마무리되면 주변인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소지품도 정리하지 못한 채 바로 비행장으로 보내진다. ‘인권 존중’은 허무한 단어놀음이 되어버리는 순간이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잡아가고 돌려보내면 과연 우리나라는 미등록노동자가 없는 완전한 법치국가가 되는 것일까? 그들을 탄압하고 구석으로 몰아붙이면 과연 나라가 평안해지는 것일까? 미등록노동자들은 정말 그렇게 나쁜 사람들일까? 나는 그 말에 쉽게 긍정할 수 없다.
루완도 미등록노동자로 2년을 살았다. 처음 3년간은 합법 노동자였고 비자 연장 신청 기간을 놓쳐 미등록노동자가 되었다. 비자 때문에 늘 걱정이 많았던 루완은 사장을 만날 때 마다 기간 연장을 해야 한다고 재촉했다. 하지만 사장은 ‘지금은 바쁘다, 그리고 아직 시간이 넉넉하다’며 태만하게 굴다가 결국 비자 연장 시기를 놓쳤고, 루완은 미등록노동자가 되어 버렸다.
미등록노동자들은 보통 최저 시급 적용도 못 받고 아파도 병원에도 다니지 못한다. 잡힐까봐 외출도 거의 못하는데 유일하게 나가는 곳이 이주노동자센터나 교회이다. 그곳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예배도 드리며 한국어도 익히고 한국 문화와 법도 배운다. 그런데 이제 교회에까지 경찰들이 들이닥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예배드릴 수 있는 자유와 공간마저 빼앗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가 아닌가?
미등록노동자라 할지라도 최소한, 종교의 자유 그리고 예배드릴 수 있는 자유는 주도록 하자. 교회 안에서, 예배 중에, 경찰이 들어가 외국인들을 체포하는 일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일이다. 어렵게 쌓아올린 한류의 명성을 허무는 행위이다. 막연한 혐오를 극복하고 우리 국민들이 외국인노동자의 현실에 대하여 이해하고 편견과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둠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둠의 영역을 넓히는 것, 어둠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어 밝은 곳의 영역을 더 넓히는 것, 그것이 세상을 더 밝게 만드는 비결일 것이다. 미등록노동자들을 어두운 구석으로 몰지 말고 밝은 곳으로 불러내자. 나는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mail: anuda2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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