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보기
* 발행일 : 2023년 9월 25일


   기후위기가 체감되는 요즘, 이 글이 소식지에 실릴 때쯤에는 그래도 설익은 가을이나마 교내를 찾아오기를 소망한다. 지난 가을이었다. 강의를 하던 중, 많은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창문 너머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평소에 농담을 진담처럼 말하는 재주가 있는 필자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다들 밖을 보시는 걸 보니 제 수업이 재미가 없으신가 봐요?”라고 말해 보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싸늘하고도 무거운 침묵뿐이었다. 괜한 말을 했다는 후회와 함께(사실은 식은땀이 날 정도로 당황했었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 보니, 갑자기 ‘낙엽’이라는 단어의 시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낙엽’은 ‘나무에서 이파리가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낙엽’인가, 아니면 ‘이미 나무에서 떨어진 이파리가 지면에 닿아 있을 때’부터 ‘낙엽’인가? 다행히도 이 엉뚱한 질문에 학생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결과, ‘나무에서 이파리가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낙엽’이라고 답변하였다. 당시 그러한 답변이 타당한지를 국어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설픈 결론이나마 학생들과 나누게 되었다. 일단, ‘낙엽(落葉)’과 비슷한 구성을 가진 단어로 ‘낙화(落花)’가 있다. 계열관계를 고려한다면, 두 단어의 차이는 단지 ‘떨어지는(落)’의 대상이 ‘잎(葉)’인지, 아니면 ‘꽃(花)’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두 단어는 공기(共起)하는 서술어에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1) ㄱ. 낙엽이 떨어진다.
         ㄴ. *낙화가 떨어진다.

   라는 예시에서, 필자의 직관으로는 (1ㄱ)의 ‘낙엽’은 ‘떨어지다’라는 동사와 잘 호응하지만, (1ㄴ)의 ‘낙화’는 그것과의 호응이 어렵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부터 많은 무리가 있음을 말씀드리며, 필자의 짧은 생각을 밝히고자 한다. 한자 사전에 의하면 ‘落’의 의미로는 ‘떨어지다, 떨어뜨리다’ 등이 있는데, 이 때문에 두 단어 모두 ‘떨어지다’라는 동사와의 호응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落’이라는 한자와 ‘떨어지다’라는 동사의 의미가 중복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동어반복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1ㄱ)은 좋지만, (1ㄴ)은 좋지 않다. 이렇게 ‘의미의 중복, 동어반복, 또는 잉여성’이라는 측면에서, (1ㄱ)은 마치 “나뭇잎이/이파리가 떨어졌다.”와 같이 수정되어야 할 것 같지만, 충분히 그 자체로도 수용된다.

   두 단어는 물론 거대한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겠지만, (1)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낙엽’은 ‘떨어진 결과’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고, ‘낙화’는 ‘떨어지는 과정’에 좀 더 초점을 둔다고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나무에서 이파리가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낙엽’이라는 것은 전형적인 ‘낙엽’의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의 짧은 생각을 긍정하신다면, 한국어 모어 화자는 일반적으로 ‘이미 나무에서 떨어진 이파리가 지면에 닿아 있을 때’부터를 ‘낙엽’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것은 ‘떨어지는 잎’이 아니라 ‘떨어진 잎’으로, ‘떨어지다’라는 과정이 모두 종료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낙엽이 떨어진다.”라는 문장은 모두에게 잘 수용되고, 과정의 유무라는 측면에서도 동어반복이 아니다. (이러한 해석이 어설프고 성긴 사고의 결과라는 것을 다시금 말씀드린다.)

   설명을 마친 필자는 스스로의 재미에 못 이겨 학생들에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나요?”라고 물었더랬다. 대답은 없었지만,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이 국어학에 큰 흥미를 느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k209789@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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