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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어떤 눈빛을 가졌을까? 한국인이 공유하고 있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애민군주의 그것뿐이었을까? 이 뜬금없는 의문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은 2개의 기사에서 비롯되었다.
그 첫 번째 기사는 ‘용에 대해 이야기하다’라는 매력적인 제목으로 시작한다. 1430년 세종12년 윤12월 19일, 그날도 어김없이 왕의 하루가 시작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상참(조회)을 하고, 윤대를 통해 문무백관에게 질문하고, 이어서 경연에 나아간다. 대화를 이어가던 중, 송(宋) 휘종이 “누런 용과 푸른 용은 길한 징조요, 흰 용과 검은 용은 재변이다. 내가 즉위한 뒤에 검은 용을 한 번 보았으니 이것은 변(變)이다.”라고 한 데 이르러서, 세종은 파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용을 볼 수 있느냐?”
이 순간 지식에 목마른 34살 성인의 눈빛은 어땠을까?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검토관이 김빈이라는 점이다. 그는 1425년 인동현감 재임 시 경상도관찰사를 도와 『경상도지리지』를 편찬한 실무형 문신이자, 갑인자 주조와 간의대, 자격루의 제조에 참여하는 등 세종대의 과학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였다. 이에 김빈은 "지난번에 양산군의 용당에서 용이 나타났는데, 사람들은 그 허리만을 보고 머리와 꼬리는 보지 못하였습니다."라며 용 목격담을 아뢴다.
세종대왕 또한 여느 임금처럼 재위기간 중 수차에 걸쳐 기우제를 지냈다. 이를테면, 용을 그려 물속에 넣으면서 지내는 화룡(畫龍) 기우제나 흙으로 토룡을 만들어 지내는 오방토룡(五方土龍) 기우제, 도마뱀을 병 속에 넣고 지내는 석척(蜥蜴) 기우제 등의 토속신앙을 통해 백성의 어려움을 보살폈다. 그런데 용 목격담을 들은 세종의 의식은 여느 임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내달렸다.
“구름과 비 사이에서 굼틀굼틀하며 움직이며 어떤 형태를 이룬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것을 용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용이 아니요, 곧 구름·안개·비·우레의 기운이 우연히 뭉쳐서 형태가 이루어져서 그런 것인 듯하다."
이어진 대화에서 세종은 자신이 확보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질문을 이어간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대동강에 용이 죽어서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으나, 무서워서 감히 꺼내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용도 죽는 수가 있는가.” 비록 자연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지닌 세종이었지만, 그럼에도 용의 실존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는 못한 것이다.
세종대왕의 탐색 작업은 10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되었는데, 1440년 1월 30일 기사는 분명 우리의 생각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임금은 “정의현에서 다섯 마리의 용이 한꺼번에 승천하였는데, 한 마리의 용이 도로 수풀 사이에 떨어져 오랫동안 빙빙 돌다가 뒤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라는 4년 전 제주도 안무사 최해산의 보고를 언급하면서 현 제주 안무사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용의 크고 작음과 모양과 빛깔과 다섯 마리 용의 형체를 분명히 살펴보았는가. 또 그 용의 전체를 보았는가, 그 머리나 꼬리를 보았는가, 다만 그 허리만을 보았는가. 용이 승천할 때에 운기와 천둥과 번개가 있었는가. 용이 처음에 뛰쳐나온 곳이 물속인가, 수풀 사이인가, 들판인가. 하늘로 올라간 곳이 인가에서 거리가 얼마나 떨어졌는가. 구경하던 사람이 있던 곳과는 거리가 또 몇 리나 되는가. 용 한 마리가 빙빙 돈 것이 오래 되는가, 잠시간인가. 같은 시간에 바라다본 사람의 성명과, 용이 이처럼 하늘로 올라간 적이 그 전후에 또 있었는가와, 그 시간과 장소를 그 때에 본 사람에게 방문하여 아뢰도록 하라."
봄기운이 요동치던 어느 이른 봄날,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임금은 4년 전 용 승천 이야기가 불현 듯 떠올랐던 걸까. 세종은 용의 모습과 승천 장소, 일기 및 목격자 진술 등의 구체적 정황에 대해 마치 어린아이처럼 질문을 쏟아낸다.
여기에서도 주목할 점은 그 보고를 올린 인물이다. 최해산은 최무선의 아들로 아버지가 남긴 『화약수련법』의 비법을 전수받아 화차(火車)를 비롯한 여러 화약병기를 제작하고 1만여 명의 화포발사군을 정비한 무신이자 과학자였다.
그런데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종은 최해산이 ‘치보했다’는 단어를 쓰고 있다. 치보(馳報)란 지방에서 역마를 달려 중앙에 급히 보고한다는 뜻이다. 용에 대한 임금의 관심을 일찍이 알고 있던 최해산은 급히 보고를 올렸고, 추측하건대 비록 실록에는 전하지 않으나 해당 사건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임금의 의식 그 어딘가에 이 사건은 종결되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세종실록』은 편년체로 구성된 일반적인 기록에 이어 권128∼135까지는 오례, 악보, 지리지, 칠정산 등의 지(志)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국가의례를 집대성한 오례(五禮)에서는 청룡이 그려진 ‘홍문대기’와 술을 떠서 잔을 채우는 도구인 ‘용작’ 등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구름에 휩싸여 승천하는 용을 보면서 임금의 머릿속을 맴돌던 단편적인 기억과 지식이 진리를 찾아 요동치며 시작과 끝을 이어갔을 것이다.
눈은 참으로 독특한 매력을 지닌 감각 기관이다. 입이 기쁨에 특화되는 동안, 눈은 슬픔을 드러낼 수 있도록 진화된 듯 보인다. 또한 입은 명확한 뜻을 가진 말을 뱉어내지만 눈은 미묘한 생각과 감정을 드러낸다. 용신에게 기우제를 지내는 임금님, 그러나 자연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사례들을 모으고 신하들과 토론하며 끊임없이 용의 실존을 탐색하는 임금님, 호기심에 반짝이는 44세 장년의 눈빛은 진정 어땠을까?
(E-mail: asyoon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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