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전을 공부하면서 당대 관점을 온당하게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고전을 가지고 학생들과 담론을 주고받을 때면 문득, 고전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고전’이란 그저 오래된 전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저 옛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가 고전을 주체적·창의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작가와 의미 있는 대화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작품의 당대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작가들의 일반적인 사상이나 의식과 함께 작가의 특수한 상황과 작가 의식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작가의 특수한 상황과 의식, 공간은 신분에 기인한다. 신분, 신분에 부여된 명칭에 따라 그에 합당한 공간에 거주하고, 사회, 정치적, 경제적 실상과 긴밀한 연결망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일조한 선비에 대해 생각이 필요하다.
선비의 모습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대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란 조선시대 기득권층으로서 행실의 모범이 되고 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라 대략 정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단편적으로만 말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부지기수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행위들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충의(忠義)사상이다.
나라에 크고 작은 위기가 찾아올 때면 선비들은 어김없이 나라를 위해 싸우고 헌신하였다. 도대체 왜. 그들은 조선을 이끄는 기득권층으로서 재력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모자랄 판인데 앞장서서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도 내놓았을까. 그뿐만 아니다. 선비들은 사제지간(師弟之間)에서도 이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선비들은 정치적 죽음의 위기가 눈앞에 있어도 생사를 초월한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가슴으로는 공감하기는 힘들지만 머리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선비란 순수하고 사심 없는 자, 도덕적으로 고귀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까지는 접근이 가능하다. 부귀영화보다 더 귀한 가치를 영위하기 위해,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한 선비들의 모습이 결국 그들의 문학에 투영된 셈이다. 결국 선비의 내적 의미와 가치를 파헤쳐야만 고전문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문학 교육도 마찬가지다. 선비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선비의 입장을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낡은 정보에 기대어 읽어내기에 급급하여 심리적으로 더욱 그 거리가 멀어져가고 있다.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기에 앞서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전을 일부 호고적(好古的) 취향으로만 돌리기에는 문학의 지속성과 연속성을 논하기 위해서 대중적으로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전에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 보다 깊이 있게 감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선비와 진솔한 대화를 이어가면서 그들을 흉내라도 내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hg2023213@kyung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