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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4년 5월 25일


   - 다음의 이야기는 한국어 교사가 경험한 지극히 개인적인 에피소드임을 먼저 밝혀둔다.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이후 우즈벡)은 우즈벡인(80%), 러시아인(6%), 타지키스탄인 등으로 구성¹된 다민족 국가이다. 국가명인 ‘우즈베키스탄’에서 ‘스탄’은 ‘땅’, ‘지역’ 또는 ‘나라’를 뜻하는데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벡 민족의 나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우즈벡은 13세기 몽골족에 기원하며 14세기의 칸 우즈베크 통치하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나 여러 민족의 점령기를 거치면서 쇠퇴하였다. 1855∼76년에는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고 1924년 소련 내 우즈벡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이 세워졌다가 1991년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완전한 독립²을 이루게 되었다.

   그 후 우즈벡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문호를 개방하였으나, 구소련의 사회주의 체제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제도와 관습이 많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지방에 사는 사람이 수도인 타슈켄트를 방문하려면 정부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한다. 관광, 비즈니스, 가족 방문 등 목적에 따른 서류를 정부기관에 제출, 승인을 받아야 타슈켄트에 머무를 수 있다고 한다. 방문 기간 중, 승인받은 기간보다 거주 기간이 늘어나면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온전히 거주 이전의 자유를 누리던 나로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다.

   무슬림의 나라 우즈벡, 여성의 권리는?

   대부분의 '스탄'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즈벡도 이슬람 국가이다. 국민 중 88%가 이슬람교도이며, 이중 수니파가 약 70%를 차지한다. 러시아 정교 등 소수의 다른 종교와 샤머니즘의 전통도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 우즈벡은 외부 이슬람 국가와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전통 이슬람 문화의 복원을 추구하며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우즈벡 유학생들은 무슬림인 것에 대하여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했던가. 한국 사람으로서 순혈주의 무슬림의 모습에는 살짝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여성에 관한 한 그런 느낌이 강하다. 예를 들면 부부가 함께 길을 걸으면서 무거운 짐을 아내 혼자 들게 한다든지, 남편의 말에 아내는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것이다. 아내가 말대꾸를 하면 손찌검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은 수치심까지 들게 한다.

   결혼한 여자는 남편 이외에 다른 남자가 있는 자리에 동석하면 안 된다. 특히 결혼한 여자의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되며 간혹 찍더라도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 결혼 전에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우즈벡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예속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일까?

   우즈벡에선 아직도 여성이 직업을 갖는 일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비교적 이미지가 좋은 교사 등의 직업을 갖더라도 퇴직 연령이 남성에 비해 여성이 턱없이 낮다. 왜 이슬람교를 중시할수록 여성의 권리는 더 제한적이 되어가는 것일까?

   부모의 입김이 강한 것도 인상적이다. 결혼은 대부분, 부모가 정해주는 상대와 성사되는데 아무도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나마 요즘 조금 나아졌다는 것이 부모가 몇 명의 예비신부의 사진을 보여주면, 그 중에서 본인이 결혼 상대자를 결정하는 식의 자기선택권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르친 우즈벡 학생들 중에 부모의 명을 거스르고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또한 부모의 명을 거역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부모를 핑계로, 사귀던 여자와 헤어지는 경우는 많이 보았다.

   한국에서 생활해 본 적이 있는 우즈벡 남성은 외국에서 자유를 맛본 우즈벡 여성을 기피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조신한(?) 무슬림 여자를 아내로 삼기를 원한다. 자신들은 한국에서 너무나 자유로운 연애를 했음에도 말이다.

   부모의 권리에는 결혼 외에도 대학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 유학 오는 많은 우즈벡 유학생들은 대부분 부모의 결정으로 한국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부모의 결정이 완벽히 올바르다고 믿고 그 뜻에 순종한다.

   이러한 우즈벡 사람들의 특성상 한국의 젊은 여교사가 우즈벡 남자 유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상당히 힘이 들게 마련이다. 종교적 특성인지, 민족적 특성인지 아니면 개인적 특성인지 구별할 수 없지만, 우즈벡 남학생들은 젊은 여교사들에게 함부로 굴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우즈벡, 유사한 문화 궤적

   한국과 우즈벡은 지리상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으로 유사한 점도 많다. 예를 들면 손님에 대한 배려와 대접,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대하는 점, 가족의 행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점이 그렇다. 오늘날 우리에게 많이 사라진 모습이지만 우즈벡에서는 여전히 공동체 윤리가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아 선호사상도 유사한 궤적이다. 우즈벡은 외부세력의 침략을 많이 받아서인지 남아 선호 사상이 유독 강하다. 전쟁이 사라진 현재까지 전통이 이어지는 이유를 짐작해보자면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의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즈벡에서 장성한 자식은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데 성인 자녀를 둔 부모는 더 이상 일하지 않고 자식들이 주는 돈으로 생활한다. 아무래도 여자보다 남자들이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으니 부모 자신의 노후를 생각한다면 딸보다 아들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자식이 보험’이라던 예전 한국의 부모들이 연상된다.

   한국인 입장에서 약간은 우스운 에피소드를 하나 풀자면.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종양 치료를 위해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던 우즈벡 학생이 있었다. 치료를 위해 의사의 여러 주의사항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을 듣던 중, 그는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정자수가 감소한다.'는 의사의 말에 충격을 받아 “나는 이제 더 이상 살 가치가 없어요!”라고 절규하며 울었다.

   치료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고 이해시키느라 힘든 와중에 ‘자식을 낳지 못하는 남자는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절망하는 제자를 보며 나는 그의 절망에 공감되기보다는 ‘이 녀석아, 이래저래 선생님이 너보다 먼저 죽겠다.’는 소리가 목구멍 밖으로 터져 나올 판이었다. 우즈벡 남성에게 사는 것은 결혼하는 것이고, 자식을 가지는 일인 것인가? 아기를 낳지 못하면 혹시 '남자 구실 못하는 사람'이란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라도 하는 것일까.

   이름에 들어간 할아버지, 나, 아버지, 남녀 성별

   한국인의 이름은 대부분 성(Last name) 한 글자에 이름(First name)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성은 조상으로부터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오고 같은 혈통임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중요시 한다. 그러나 우즈벡 사람들의 성과 이름은 조금 다르다.

   우즈벡인들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맨 앞에서 차례대로 할아버지 이름, 자신의 이름, 아버지 이름을 순서대로 붙여서 작명한다. 그리고 집안에 따라 마지막에 남녀 성별을 표시하는 이름을 넣기도 한다. 이렇듯 우즈벡인의 이름에는 4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후대로 가면서 성이 계속 바뀐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방식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즈벡 남성의 이름을 한 번 살펴보자. Zokirov umidjon inom ugli(조키로브 우미드존 이놈 우글이)이라는 제자가 있다. 첫번째 나오는 'Zokirov'는 할아버지의 이름, 'Umidjon'는 나의 이름, 'inom'은 아버지 이름이다. 'Zokirov'에서 ‘ov'는 남자를 뜻하고 마지막의 'ugli'도 남성을 나타낸다. 그러니 우즈벡 사람들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Zokirov umidjon inom ugli'라고 하는 것은 '나의 할아버지, 나, 아버지의 이름을 각각 말하고, 그리고 저는 남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된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이름 속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결국 일종의 여성 차별로 보인다. 우미드존의 여동생 이름을 보자. 'Zokirova Sitora inom Qizi'이다. 할아버지 이름 ‘Zokir’에 여성임을 나타내는 'ova'가 붙어서 ‘Zokirova'가 되고, 여동생 자신의 이름인 'Sitora', 아버지 이름 'inom', 그리고 마지막에 성별을 알려주는 ’Qizi‘를 붙여 이름이 완성된다.

   할아버지의 이름에 남성은 'ov', 여성은 'ova'를 붙여서 성(姓)으로 사용하는데, 가운데 이름(Middle name)을 자신의 이름으로 소개한다. 작명 시에 자주 사용하는 이름으로는 이슬람 성인의 이름인 모함마드 (Mohammad), 알리 (Ali), 암나(Amina) 등이 있다. 기억나는 이름으로는 ‘금요일에 태어난 딸’이란 의미의 ‘사이다(Saida)’란 여학생이 생각난다. 최근에는 서양식 이름이나 다른 형식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즈벡의 대표 음식, 기름밥 오쉬

   우즈벡 시람들은 집에 손님이 많이 오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손님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면 온 가족이 융숭하게 대접한다. 보통 낮은 테이블 혹은 매트 위에 천을 깔고 음식을 차린 후에, 3~4시간씩 담소를 나누면서 함께 식사를 한다. 손님 접대용으로 빠질 수 없는 음식이 있는데 우리의 볶음밥과 비슷한 오쉬가 그것이다. 오쉬는 알렉산더 대왕도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질 만큼 그리스, 아랍, 이란, 인도 등에서 보편화된 음식이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반갑고 귀한 손님이 방문하면 남자 주인이 직접 오쉬를 요리해서 대접하고 생일이나 결혼 같은 잔칫날에는 당일 새벽에 남자들만 식당이나 집으로 초대하여 오쉬를 즐긴다. 우즈벡 사람들은 평상시에도 오쉬를 먹지만 특별히 목요일을 ‘오쉬 먹는 날’로 정해 먹기도 한다. 우리가 금요일을 불금이라 하여 치맥을 즐기는 것과 비슷한 풍습이랄까?

   오쉬는 지역마다 만드는 방법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양의 비계, 양고기, 당근, 마늘, 쌀 등을 재료로 한다. 먼저 큰 솥이나 냄비에 양의 비계를 녹여서 기름을 만들고 그 기름에 양고기와 채 썬 당근을 넣고 볶다가 물에 불려둔 쌀을 넣는다. 그리고 뚜껑을 덮어 익히거나 또는 뚜껑을 연 채로 익을 때까지 저어준다. 뜨거운 기름에 쌀을 넣어 익힌다고 해서 ‘기름밥’이라고도 불린다. 모든 음식이 그렇듯이 기름이 들어가면 맛이 있다. 그래서 우즈벡 사람들은 종교적 이유에 더하여, 기름이 적은 담백한 한국의 음식을 거의 좋아하지 않는다.

   우즈벡 유학생이 방학이 되어 고향에 갔다가 돌아올 때는 체중이 20kg 가량 불어서 올 때가 많다. 첫 번째 이유는, 한국에서처럼 ‘힘들게 일하지 않아서’, 또는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받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러나 둘째는 고향에서 어머니가 요리해주시는 기름기 많은 오쉬를 마음껏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우즈벡 유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우즈벡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보통 5L의 식용유를 먹는다고 한다. 우즈벡 사람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 심장 질환, 뇌졸중 및 기타 혈관 질환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지방의 심각성을 깨닫고 조심하려고 한다지만 오랜 세월 길들여진 음식 습관을 바꾸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국경을 넘어야, 바다를 볼 수 있는 나라

   우즈벡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큰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다섯 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가장 가까운 바다는 카스피해로, 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야 갈 수 있고 이 또한 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

   우즈벡 내에는 큰 호수가 몇 개 있다. 가장 크고 유명한 호수는 아랄해이다. 소금기가 있어서 이름에 ‘해(바다)’가 붙어 있지만, 우즈벡 사람들은 아랄해를 바다가 아닌 호수로 생각한다. 다른 유명한 호수로는 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차르바크 대호수가 있다. 차르바크 대호수는 수상 스포츠와 레크리에이션 활동 장소로 시민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국경을 거쳐야 바다를 볼 수 있는 나라의 특성 때문인지 우즈벡 유학생들의 바다 사랑은 깊고도 넓다. 학생들과 부산 해운대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바다를 본 우즈벡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너무나 감격해 했다. 나는, 바다가 시원해서, 따분한 수업을 뒤로 하고 야외로 나와 즐거워서 그런 줄 알았다. 그때까지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세상에 있는 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도 우즈벡 제자들은 시간만 나면 삼삼오오 부산 해운대를 찾는다고 한다. 여유가 많아진 일부 학생들은 일본 여행도 하고 베트남, 필리핀 여행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마무리

   나는 앞에서 우즈벡 근로자와 유학생들과의 공동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우즈벡 문화의 작은 단면들을 짤막하게 소개해 보았다. 이 글이 우즈벡의 현실과 문화를 다른 이들에게 잘못 전달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도 있지만 어느 한국어 교사의 소소한 경험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문화는 다른 문화와 순환되고 교류할 때 힘이 커진다. 이미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이제 우리도 단일민족을 자랑으로 여기던 시대를 벗어나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에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 anuda21@daum.net)


1) 출처: 다음백과
2) 출처: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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