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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4년 9월 25일

   2024년 여름의 폭염은 2학기가 시작되었는데도 기세가 이어졌다. 우연히 대명동에 볼 일이 있어 왔다가 옛 생각에 계명대학교 대명캠퍼스에 가 보았다. 정문을 지나 새로 생긴 광장 분수대의 시원한 물줄기가 나를 반겨주었다. 예전에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교양 과목을 강의하러 가던 이 길을 다시 걸으니,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설레었다. 성서캠퍼스의 웅장함에 길들어 있다가 대명캠퍼스에 오니 걸리버가 된 것처럼 건물들이 아담해 보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나가는 학생들이 나의 제자인 것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폭염에 많이 걸었더니 허기가 져서 대명시장에 갔다. 대낮의 아스팔트는 화산처럼 눅눅해 보이고 아지랑이 피어올라 사방이 흐려지면서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대명시장까지 잠시 걸어가는 이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목이 마르고 갈라지는 갈증과 함께 리넨 셔츠마저 땀에 흠뻑 젖어 시원한 에어컨 앞에 앉아서 얼음 동동 띄운 콩물 한 잔을 들이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대명시장도 예전 같지 않아 한적하고 낡아 보였다. 예전에 꽉 들어찬 사람들과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는 사라지고 오래전 점포에서 아무도 사 가지 않는 물건 뒤에 앉아있는 노파의 표정이 애처로웠다. 학생들로 붐비던 분식집도 떡볶이 국물만 하염없이 졸아들고 있고 돼지국밥집도 무표정하게 누린내만 자욱해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방이 막힌 시장의 열기에 더욱 지쳐갈 때 에어컨이 있어 보이는 미용실로 향했다. 폭염에 찌들어 머리카락마저 성가셔서 깎고 나면 왠지 바다로 날아갈 것 같았다. 미용실 문을 열자, 파마약 냄새가 화약처럼 뿜어져 나왔다. 미용실 안은 시간이 멈춘 듯이 적막했다. 1990년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지야, 들어오이소.”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뒤쪽에서 나왔다. 두루마리 휴지를 탁자에 놓는 것을 보니 뒷간에 다녀왔을 성싶었다. 그녀의 모습은 붙박이장처럼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이 미용실을 개업한 후부터 지금까지 미용사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많이 덥지예. 에어컨 틀어 주께. 이리 앉즈이소”

   낡은 에어컨의 문이 드드득 열리면서 텁텁한 바람이 비어져 나왔다.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박카스 비슷한 음료수도 주었다. 앉아서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고 있으니 에어컨 바람도 차츰 시원해졌다. 지친 몸이 차츰 안정되어 갔다.

   “빠마나 염색은 아닌 것 같고 우예 짜르까예?”

   “시원하이 처주이소.”

   분무기로 물이 뿌려지면서 숙련된 솜씨의 가위질이 시작되었다. 솜처럼 부드러운 물을 맞으며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니 노곤해졌다. 시나브로 눈이 감기면서 잠깐씩 꿈을 꾸기도 했다. 그 꿈은 치열했던 과거의 기억을 소환시켰다.

   “아지야는 볼이 불독처럼 불룩한데 머리는 세로로 삐쭉하이 처가 얼굴이 더 커 뵌다 아이가. 위에를 부품하게 살리가 밑에 볼하고 넓이를 마차야 얼굴이 작아 뵌대이. 빠마 해가 후까시 좀 넣으면 좋겠구마는. 그라고 가리마를 와 반대로 타고 있노. 여서 이리로 타야 맞대이.”

   비몽사몽간에 거울을 보면서 설명을 듣다 보니 지금의 머리 스타일이 얼굴과 전혀 맞지 않음을 알있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 거울 보기도 두려워 대충 머리를 빗고 다닌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도 매일 거울을 보면서 멋을 부리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니 갑자기 뭉클해졌다. 좀 늦었지만, 폭염은 틀림없이 가을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마법처럼 나타날 흰 구름 드높게 흩어지는 파란 가을 하늘은 폭염을 견딘 존재에 대한 자연의 값진 선물이다. (E-mail: dk8153@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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