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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4년 11월 25일

   최근 내가 몸담은 기관에서 정치철학을 하는 유명 강사를 초청했다. 그의 강연 주제는 "디지털 시대의 능력주의, 그리고 외로움"이었다. 그는 산업화 이후 물신화와 함께 등장한 인간소외의 모습이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여러 데이터와 자료를 근거로 설명했다. 계층 간, 연령 간 불평등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외로움 중에서도 특히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이 겪고 있는 외로움에 대해 주목하였다.

   그는 사회조사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고립과 은둔 상태에 있는 청년 수를 약 61만 명으로 추정했으며, 이들의 사회적 울분 지수가 매우 높음도 설명했다. 이러한 사회적 울분은 자살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음을 덧붙였다. 그는 청년들이 겪는 외로움의 원인으로 '격차를 정당화하는 능력주의'를 꼽았다. 이는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제로서, 스스로도 자신을 밀어낸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돌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강연은 '인간소외' 주제로 공부해 온 나를 집중하게 했다. 특히 그가 제시하는 문제 해결책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어떤 사안에 대한 문제 진단은 처방도 함께 따라오기 마련이다. 사회 문제는 정치, 경제, 문화의 영역이 사슬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 처방은 각 학자마다 자신이 지닌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내려진다. 마침 강연 후에 청중들이 본인의 경험에 바탕한 질문을 던졌고, 강연자의 답이 이어졌다.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질문이 있었다.

   첫 번째 질문은 "저도 은둔 청년입니다. 오늘 한참 만에 밖으로 나왔고, 이 강연을 들으러 왔습니다. 강연을 듣고 많은 위로가 되었지만, 현재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두 번째 질문은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 후 모두가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가끔 딸아이가 자신이 외롭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하는 딸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딸을 대해야 할까요?" 였다.

   강연자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당장 질문자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나와 술 한 잔 하게 되면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겠습니다."라고 답했고, 두 번째 질문자에게는 "딸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주기만 하세요"라고 조언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 문화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현재 외로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의 관심과 경청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강연자는 청년 외로움의 해결 방법 중 하나로 ‘경청'을 제시했다. 과연 이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외로움을 얼마만큼, 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회 문제를 진단할 때 사회구조적 접근에서는 그 사회의 구조 및 제도의 변화를 강조하는 반면, 사회심리적 접근에서는 인간 행위의 변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어느 한 측면만의 강조로는 진정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기가 어렵다. 불교 철학에서는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은 바른 견해(正見)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지속적인 노력(正精進)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때 바른 견해를 제시함에 있어서는 서로 연관된 것들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함을 전제한다.

   신라 고승인 의상대사는 법성게(法性偈)에서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모두이며, 모두가 곧 하나이다.(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라고 했다. 이는 화엄사상의 핵심 요소를 담은 말로서 「화엄경」에서의 ‘상즉상입(相卽相入)’을 풀이한 말이기도 하다. 이는 '나'와 '이 세계'가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상호연관성을 전제로 하는 연기(緣起)적 세계관의 또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제각각의 위치와 모양을 지닌 채 독립성을 유지하지만, 그 독립성을 지닌 개체는 또 다른 독립성을 지닌 개체와 상즉상입의 관계로 엮여 있어 그 어떤 존재도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존재로 인식된 것은 조건의 집합체이며, 조건이 변화면 존재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한 인간은 사회와 나아가 세계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어, 어느 사안의 변화를 위해서는 ‘나’로 구성된 것들의 변화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조건’들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둘은 상호관계성을 지니고 있어, 어느 한쪽에서 실천이 이루어지면 다른 쪽에서도 자연스러운 변화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강연자가 제시한 ‘경청’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관계에서의 개인적 실천이자 사회 변화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이는 격차를 인정하는 능력주의가 야기한 청년들의 ‘외로움’을 해결해 가는 소통의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경청은 관계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실천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이 바른 견해의 관점에서 내려진, 사회 변화의 출발점이 되는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심리치료에서도 치료자와 환자 관계는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치료자는 환자를 언제나 친절과 존중으로 경청하는 관계의 원칙에서 출발해야 함을 강조한다. 관계의 기본인 친절과 존중을 통한 ‘경청’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다른 조건들의 변화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 안에서 젊은 청년들을 매일 만난다. 그들은 맑은 개울물처럼 자신들만의 신선함과 풋풋함을 지니고 있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분명 통계에 포함된 외로움을 겪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강연자가 말한 것처럼, 나 역시 당장 그들의 삶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외로움의 속박에서 벗어나, 그들의 맑음과 풋풋함을 온전히 드러내며 세상과 마주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mail: Kbk@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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