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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혼란 속에 놓여 있다. 지난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절차로 촉발된 국민 간의 정치적 균열과 대립이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당사자이자 목격자로서 이 순간순간들을 고스란히 통과해 나가고 있다. 아마도 지금 이 시간들은 향후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든 현대 한국의 역사적 분기점 가운데 하나로 분명하게 기억될 것이다.
이런 격변의 중심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다시금 깊이 성찰할 필요를 느낀다. 개인이 속한 다양한 공동체에서 짊어져야 할 책임을 환기하고 자신의 위치를 되짚어 보며 함께 나아갈 길을 지속적으로 모색한다면, 갈등과 반목으로 인한 극심한 진통을 겪을지언정 우리는 보다 더 따스하고 활력있는 사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공동선(Common good)’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공동선’은 미국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의 이기심을 줄이고 사회의 본질적 가치를 되새기며 공동체의 발전을 중시하는 미덕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공동선’의 개념은 우리 사회에 산재된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게서도 꾸준하게 요청되어 온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유엔에서 아동 구호와 식량 문제를 직접 경험하면서 세계 각국의 경제 구조와 윤리적 문제를 비판한 사회학자 장 지글러(Jean Ziegler)는 빈곤과 부의 문제를 개인의 삶으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문제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정치철학·페미니즘·동물 권리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해온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역시 인간의 이인만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동물 학대나 빈곤, 질병 등의 문제에 있어 생명에 대한 경이의 감각을 촉구하며 그것이 인간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것이라 역설하였다. 결국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차원의 제도 마련이나 법률 정비에 앞서 사회를 이루는 개개인의 따스한 마음과 정의로운 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제언은 비단 현대 학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공(子貢)이 물었다. “종신토록 행할 만한 한 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恕’(서)일 것이다. ‘恕’(서)란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 『衛靈公』,『論語』
중궁(仲弓)이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손님을 뵙듯이 삼가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祭祀)를 받들 듯이 조심하며, 자신이 하고자 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도 원망함이 없으며, 집안에 있어도 원망함이 없을 것이다.”
[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 『淵』, 『論語』
인(仁)의 정치를 강조했던 공자(孔子)는 인을 실천하는 방도이자 평생토록 삶을 성찰할 태도로서 ‘서(恕)’를 꼽았다. 이에 대해 주자는 “경(敬)으로 처신하고 서(恕)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사적인 마음이 용납될 곳이 없어져 마음의 덕이 온전해진다(敬以持己, 恕以及物, 則私意無所容而心德全矣).”라고 부연하였다.
갈등과 반목이 극에 달한 지금, 우리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가르침을 다시금 깊이 되새기고 이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더욱 따스한 시선으로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을 진심으로 존중할 때, 비로소 공동체의 갈등은 누그러지고 사회적 신뢰는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나아간다면, 그 어떤 엄혹한 겨울일지라도 반드시 따사로운 봄의 기운이 깃들 듯 우리 사회 또한 찬란한 봄을 진정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ryeo6621@hanmail.net)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作>
(출처: 중앙일보 김병기 ‘필향만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5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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