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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5년 5월 25일

   2025년 현재, 우리는 하루하루가 무섭도록 빠르게 지나가는 AI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눈 비비고 일어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많은 것들이 변화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만큼 기술 발전과 문화 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취향도 속도감 있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우리 선현들은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수많았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 문화’는 모두 무엇을 남겼을까? 아마도 사람이 ‘이름’을 남기듯 그들 ‘문화’도 나름의 ‘이름’을 남기는 듯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친숙했던 ‘이름’이 과거 우리를 떠난 첫사랑의 희미한 뒷모습처럼, 좀처럼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아! 그런 것이 있었지?’라며 되뇌일 뿐 그저 아재개그마냥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주말 오랜만에 집에서 밥을 해 먹으려고 하니, 집에 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쌀’을 사러 어디로 가야 할까? 너무나 자연스럽게 집 근처에 있는 슈퍼나 마트에 가서 3㎏, 5㎏, 10㎏ 단위로 포장된 쌀을 사게 될 것이다. 움직이기 귀찮다면 온라인몰에서 주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는 어디에서 쌀을 사셨었지? 아! 그렇다. ‘쌀집’이다. 과거 쌀과 같은 곡식은 ‘쌀집’이라는 곳에 가야만 구매할 수 있었다(‘싸전’은 ‘쌀집’보다도 이전에 쓰이던 말이다.).

출처: 소믈리에타임즈
(https://www.sommeliertimes.com)
 
출처: 소믈리에타임즈
(https://www.sommeliertimes.com)

   집 근처 ‘○○(쌀)상회’라는 상호명을 가진 ‘쌀집’에 가서 쌀도, 보리도, 콩도, 팥도 살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곳을 ‘밥집, 술집’처럼 편안하게 ‘쌀집’이라고 불렀다. 한때 인기가 많았던 모 방송의 연출가(PD)가 ‘쌀집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면 우리 집에서는 쌀을 한 번 살 때 얼마만큼 샀을까? 3㎏, 5㎏, 10㎏? … 아니다. ‘두 되, 서 말, 한 섬, 한 가마(니)’처럼 ‘되, 말, 섬, 가마(니)’를 단위로 샀었다. 그래서 몸무게가 80㎏쯤 나갈 때에는 ‘쌀 한 가마다/쌀 한 가마 나간다’고 표현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포대(40㎏)’에서부터 ‘포장지(㎏들이)’로 단위가 바뀌게 되면서 이들 단위를 잘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들은 주로 ‘용기’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는데, ‘되’나 ‘됫박’이라는 말도 그 용기와 함께 자연히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져 가게 되었다.

출처: ‘되’, <표준국어대사전>
 
출처: ‘됫박’, <표준국어대사전>

   한편 이들 단위 용어가 잘 사용되지 않다 보니, 함께 사용되던 ‘수(數)’인 ‘서/석(三), 너/넉(四), 닷(五)’ 등도 잘 쓰이지 않고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 청년 세대가 이러한 어휘를 듣고 사용하면서 자라지 못한다면, 이러한 말들은 자연스레 ‘사어(死語)’가 되거나 ‘고어(古語)’가 될 것이다. 마치 나무의 잎이 파랗게 돋았다가 낙엽으로 지듯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문화’라는 것도 사람처럼 ‘이름’을 남기지만, 생명을 다한 그 ‘이름’은 서서히 우리의 일상과 머릿속에서 첫사랑의 추억처럼 아련히 저편 너머로 스러져 간다.(uncleshadow@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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