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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5년 11월 25일

   얼마 전, 학창시절부터 즐겨 듣던 가수의 공연을 다녀왔다. 30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차곡차곡 본인만의 음악을 쌓아온 가수의 음악을 듣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공연의 끝은 그 가수가 오래전 그룹 활동을 했던 시절의 음악으로 채워졌는데, 갑자기 노래를 잇지 못한 채 목이 메어 한참을 멈추어 섰다. 함께 그룹 활동을 하던 이가 1년 전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함께했던 추억이 서린 노래를 부르다 울먹이는 가수를 보며, 나 역시도 그 음악을 듣던 시절이 떠올라 울컥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방법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함께했던 시절의 노래를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그 나름의 기억이고 애도였을 것이다. 전통시대 선비들 역시 죽은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기억했는데, 만시(挽詩)나 제문(祭文)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문집에 다수의 만시를 남긴 옥천(玉川) 조덕린(趙德?, 1658~1737)도 죽음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출사 후 당쟁에서 비롯된 삶의 굴곡 속에서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많이 맞이하였다.

   제문은 현재 실존하지 않는 대상을 향해 전언하는 형식을 지니고 있어, 대체로 상투성이 강하게 작동된다. 하지만 조덕린은 가족이나 친족의 죽음 앞에서 실제의 삶과 관계에 우선하여 작품을 창작했기 때문에 규격화된 격식이나 상투적 표현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季秋之月 구월에
   有事先? 선대 묘소에 일이 있어
   負土之役 흙 지고 나르는 일을
   爾病不共 너는 병들어 함께하지 못했네
   力疾扶曳 병중에 억지로 몸을 이끌고
   來?墳庵 분암에 와서 누웠네
   畢事而還 일을 마치고 돌아와
   相對涕? 마주 보고 눈물을 흘렸네
   余返于峽 나는 골짜기로 돌아왔고
   爾歸于家 너는 집으로 돌아갔네
   ?離足悲 잠시 떠나는 것도 충분히 슬픈데
| 死別則那 죽어 이별하는 것은 어떠하랴
居然一疾 어느덧 한 번 병에 걸려
日月以深 날로 달로 심해졌네
?歸至門 빨리 돌아와 문에 이르러
聞爾呻吟 네 신음 소리를 들었네
繼之?泣 계속 눈물 흘리며
謂我能來 내가 왔다고 말하였네
孰謂斯疾 누가 이 병을 생각했으리오
若是之乖 이와 같이 어그러질 줄을
臨絶之託 임종할 때의 부탁
男娶女嫁 아들 장가보내고 딸 시집보내는 것이네

   조덕린이 자신의 아우인 조덕빈(趙德賓)을 애도하며 지은 작품 가운데 일부분이다. 동생의 죽음 이후 떠올린 기억은 망자의 행적에 대한 상투적인 칭송이 아니라 형제가 함께했던 순간이었다. 이미 병중이었던 아우는 선대 묘소에 와서도 누워있었을 뿐이었는데, 서로 마주 보고 눈물을 흘리던 순간 이미 그들은 이별이 머지않았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떠올린 것은 이별의 마지막 순간과 임종할 때의 부탁이다. 조덕빈은 자신의 부재 이후 남겨질 자식들의 혼인을 마지막까지 걱정했는데, 이 순간을 되살려낸 것은 조덕린 스스로 그 순간을 잊지 않고 동생과의 약속을 지켜가겠다는 일종의 의지 표현으로도 보인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기억하려고 하는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법이다. 유난히 함께했던 시절의 노래들로 채워서 마지막까지 이어졌던 공연은, 함께 시작했던 음악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자신만의 다짐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skyey0324@koreastud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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