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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6년 3월 25일

   목련은 어딘가 매미를 닮아 있다. 화사한 봄을 앞둔 겨울의 끝자락, 목련의 꽃봉오리는 조용히 꽃 피울 준비를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제 몫의 계절을 기다리는 모습이 그렇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공기 속에서도 가지 끝에는 작은 꽃망울들이 단단히 맺혀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무가 긴 시간을 속으로 접어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3월 어느 날, 털이 복슬복슬한 목련 꽃망울을 따서 가만히 살펴본 적이 있다. 세로로 잘라보니 부드러운 털이 여러 장의 꽃잎을 감싸고 있었다. 그것을 한 장씩 세어보면 어김없이 여섯 장이다. 서로 포개진 꽃잎들은 추운 겨울 동안 온기를 나누며 버텨온 듯 보였다. 아직 피어나지도 않은 꽃 안에서 이미 봄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날이 따뜻해지면 목련은 비로소 털옷을 벗고 꽃잎을 연다. 아직 잎도 나지 않은 마른 가지 위에서 하얀 꽃들이 환하게 피어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다. 겨울을 견디던 시간이 한순간 빛으로 바뀌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른 꽃들이 잎과 함께 조심스럽게 피어나는 것과 달리, 목련은 마치 기다림을 한꺼번에 터뜨리듯 가지 위에서 먼저 환하게 열린다.

   하지만 그 화사함에 비해 만개의 순간은 짧다. 며칠 사이 꽃잎이 벌어지고 어느새 바람에 흩어진다. 봄바람이 한 번 스치고 지나가면 어느새 꽃잎들이 하나둘 떨어져 마당 위에 흩어진다. 그래서인지 목련을 바라볼 때면 늘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긴 시간을 견딘 뒤에야 잠시 허락되는 순간이다.

   언젠가 꽃잎 한 장을 떼어 혀끝에 올려 본 적이 있다. 은은한 향이 먼저 퍼지고, 씹어 보면 쓴맛과 매운맛이 함께 느껴진다. 화사한 겉모습과는 다른, 예상하지 못했던 맛이다. 기다림이 꼭 달콤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씁쓸하고, 때로는 매운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꽃이 되는지도 모른다.

   꽃이 진 자리에는 곧 짙은 녹음이 뒤따른다. 유난히 크게 피고 짧게 지는 꽃,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무성하게 자라는 잎들을 보면 어느새 가지마다 초록이 번져 나무 전체를 덮는다. 꽃이 피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그 역시 나무가 살아가는 또 다른 시간이다.

   미국 남서부의 테와 푸에블로(Tewa Pueblo) 사람들은 6월을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말을 떠올리면 막 짙어지기 시작한 목련 잎이 생각난다. 꽃이 지나간 뒤에야 초록의 시간이 찾아온다. 계절은 그렇게 조용히 깊어진다.

   여러 해를 살아오면서도 이상하게 가을의 목련은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아니, 보았어도 미처 마음에 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꽃이 피는 순간만 기억하지만, 나무의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다. 땅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매미처럼, 목련도 오랜 기다림 끝에 잠시 꽃을 연다. 올가을에는 꽃이 아닌 목련을 한번 바라볼 생각이다. (phantasma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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