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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끝나갈 무렵, 인도네시아에서 메시지 한 통이 날아왔다. 고향으로 돌아간 지 벌써 8, 9년은 족히 되었을 제자였다. 한국에 머물 때도 워낙 재바르고 현명해 남에게 손 한 번 벌린 적 없던 청년이, 다시 한국에 오고 싶지만 경력증명서 발급이 어렵다며 조심스레 도움을 청해온 것이다.
딸아이 집에서 분주한 명절을 보내느라 대구에 내려와서야 겨우 통화가 닿았다. 전화를 연결하는 짧은 순간, 나는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 속에는 이미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된 늠름한 가장이 앉아 있었다. 자신을 꼭 닮은 두 아들을 나에게 소개하며 인사를 시키는데 ‘내가 이렇게 가정을 잘 꾸리며 살고 있어요.’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는 그새 스스로 해답까지 찾아놓은 상태였다. “꼭 다시 한국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며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저려왔다. 한국에 다시 오지 않고도 고향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어제는 수원에 살고 있는 미얀마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얀마로 돌아가는 친구 편에 보낼, 어머니의 관절염 약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어머니가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하신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팠다. 미얀마에서는 좌변기가 없는 화장실이 많아, 그 상황이 얼마나 힘들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진통소염제와 연고, 영양제 등을 검색해 꼼꼼히 적어 보내주었다.
요즘 들어 부쩍 예전 제자들에게서 연락이 많이 온다. "한국 하면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라는 말은 조용히 학교만 다니며 사는 나를 다시 일으키게 하는 순간이다. 물론 무작정 비자를 내달라며 떼를 쓰는 낯모르는 외국인들이나 토픽 신청, 사통신청을 해달라는 연락에 지칠 때도 없지 않다. 최근 SNS를 개설한 지인은 쏟아지는 연락에 자제를 권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시작하며 SNS와 거리를 두고 조용히 지내던 중, 경찰 출신의 행정사님이 최근 제안을 해왔다. "우리 사무실을 근로자들과 만나는 사랑방으로 사용하세요."
며칠 뒤, 나는 그 사무실에서 열린 작은 다과회에 그동안 소원했던 몇몇 제자들을 불렀다. 추운 길거리에서 기다리던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가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에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이제는 각자 한 집안의 기둥이 된 이들이었다. 그 광경에 화들짝 놀라 제자들을 일으켰지만 우리가 만나지 못한 기간이 몇 년이 아닌, 채 몇 시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따뜻한 마음이 살아났다. 다과를 나누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자리를 옮겨 점심을 함께 했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이제는 30대 중후반이 되어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한국에서 살아내느라 참 고생이 많다.
헤어질 즈음, 한 제자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선생님, 꼭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나는 기쁜 마음으로, 가겠노라 약속했다. 불러주는 제자가 있고 부르면 달려오는 제자가 있어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달란트가 있어요. 모든 사람에게 신뢰를 주는 따뜻한 분이에요.” 물론 대학에서의 강의도 보람이 있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한 한국어 한 마디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낯선 땅에서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는 것, 그것이 나의 달란트를 제대로 발휘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사무소를 내어주신 행정사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anuda2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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