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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공기(公器)라는 말이 있다. 공적인 목적을 위해 쓰이는 그릇이라서 그런가. 책에 장서인을 찍어가며 후대에 전하고자 했으나 뒷날 다른 집안에서 발견된 것이 수없이 많다. 서원 같은 데서 “소장한 책을 절대로 문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所藏書冊 一切不出門外).”라는 원칙을 세웠음에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초결백운가』는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 초서(草書) 서체를 100개의 운(韻)으로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초서를 배우기 위한 학습용 교재라 하겠다.
각 도서관에 확인해보면 비슷한 책이 여러 본 소장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은 특별하다.
계명대 소장본의 표지 이면에 있는 내사기(內賜記)를 보면 “萬曆十三年五月日 / 內賜同知中樞府事成渾 / 草訣百韻歌一件 / 命除謝恩 / 左副承旨 臣李[手決]”으로 되어 있고, 첫장 우측 상단에 “宣賜之記”라는 보인(寶印)이 찍혀 있다. 우계 성혼(成渾)이 1585년(선조 18)에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을 겪으면서 유실되었다. 이 책은 성혼이 내사받고 81년이 지난 1666년(현종 7)에 그 외손자 윤선거가 우연히 입수하게 된다.
입수 경위를 보면, 어느 날 제자 박동휴(朴東休)가 말하기를, “한양 동문 안의 김(金) 아무개 집에 이 첩이 있는데, 어느 하인에게서 얻은 것이라 하며 물건을 주고 바꾸어 가져왔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윤선거는 이를 되찾고자 생각하고 생질 이순악(李舜岳)의 집에 있던 것을 박생에게 주어 김씨(金氏) 집에 있던 책과 바꾸어 오게 하여 되찾아온 것이다.
“두 손으로 받들어 경건하게 감상하니, 마치 커다란 보석을 얻은 것만 같았다.”
“이미 얻어온 뒤에 살펴보니, 첩의 본래 모습은 36장이었으나 중간의 23장이 빠져 있었다. 어느 때에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으니 참으로 개탄스럽고 애석한 일이다.”
“전쟁의 불길 속에서도 끝내 수화(水火)의 재앙을 면하였고, 비천한 이들의 손을 거치면서도 완전히 훼손되거나 버려지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구나.”
“이것이 파평윤씨의 옛 물건임을 알게 하고, 다시 우리 후대 자손들에게 돌아가게 하였으니, 또한 다행스럽고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그는 마음속으로 깊이 느끼는 바를 절절하게 표현하였고, 후대에 경계하는 말도 빠트리지 않고 기록하였다.
“이것을 전하여 집안의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청전, 靑氈]로 간직하게 하는 것이 어찌 우리 자손들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이 『초결백운가』는 윤선거가 입수한 때로부터 345년이 흐른 때에, 필자가 발견하여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수장하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저 옛날 윤선거의 염원대로 파평윤씨 집안에 소장되지 않았지만, 스토리가 있는 이 책이야말로 값진 문화유산이 아니겠는가. (injin02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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